“통상적인 생애주기대로라면 K뷰티는 이미 정점을 지나야 합니다. 하지만 한 브랜드의 빈자리를 또 다른 브랜드가 메우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성장세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박지나 파트너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뷰티 열풍을 이같이 진단했다. 한두 개 히트상품이 이끄는 일시적인 유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박 파트너는 맥킨지 한국오피스에서 소비재·유통 부문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다. 특히 패션·뷰티·럭셔리 분야에서 국내외 기업의 성장 전략과 브랜드 포트폴리오, 글로벌 진출 등을 자문해왔다.
이력도 독특하다. 애플코리아에서 영업기획·운영을, 구찌코리아에서 리테일 전략과 고객관계관리(CRM)를 담당했다. 이후 2019년 화장품과 헤어·바디 제품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 ‘심플리오’를 직접 창업해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으며 지난 3월 맥킨지 파트너로 승진했다. "하나 주춤하면 새 브랜드가 생겨"박 파트너가 주목하는 것은 K뷰티의 ‘지속성’이다. 하나의 뷰티 트렌드는 통상 일부 소비자의 관심에서 시작해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한 뒤 성장세가 둔화하는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최근 K뷰티는 한 브랜드의 인기가 꺾이면 또 다른 브랜드와 제품이 그 자리를 메우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K뷰티의 성장 속도는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27.3% 증가한 70억달러로 역대 상반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수출액이 14억5000만달러로 중국(10억1000만달러)을 제치고 최대 시장으로 올라섰다.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과거와 달리 미국과 일본, 유럽 등으로 시장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K뷰티 열풍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대 중반에도 설화수와 아이오페의 쿠션 화장품 등 한국 제품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당시에는 소수 대형 브랜드와 몇몇 히트상품에 대한 관심이 K뷰티 전체의 인기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해당 브랜드의 인기가 식으면 K뷰티에 대한 관심도 함께 떨어졌다.
박 파트너는 “과거에는 소수 브랜드가 K뷰티 열풍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한 브랜드가 주춤하면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하는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특정 회사 제품을 찾는 것을 넘어 K뷰티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음 제품과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콜마, 코스맥스 … ODM업계 세계 최고수준변화의 배경에는 한국콜마·코스맥스 등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국내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이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브랜드가 자체 생산시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지 않아도 아이디어와 제품 기획력만 있으면 비교적 빠르게 시장에 뛰어들 수 있어서다.
박 파트너는 “한국의 제조 역량을 고려하면 새로운 브랜드가 계속 등장하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과거 대형 화장품 회사들이 연구개발부터 생산, 마케팅과 해외 유통까지 대부분을 직접 담당했다면 지금은 제조와 물류, 판매 기능이 분업화되면서 작은 브랜드도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틱톡과 아마존을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도 K뷰티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 브랜드 전체를 알리지 않아도 소수의 ‘히어로 제품’이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 곧바로 해외 판매로 연결될 수 있게 됐다.
그는 “과거에는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하려면 상당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좋은 제품 하나로도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며 “다양한 제품군을 처음부터 갖추지 않고 핵심 제품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키우는 전략도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세계 뷰티산업의 유통 구조도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맥킨지는 현재 약 4500억달러 규모인 글로벌 뷰티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약 5% 성장하고, 온라인 채널이 전체 뷰티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26%에서 2030년 약 3분의 1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맥킨지가 본 K뷰티의 저력인공지능(AI)의 확산은 브랜드 간 경쟁 방식마저 바꾸고 있다. 소비자가 검색창에 브랜드명을 직접 입력하기보다 자신의 피부 타입이나 원하는 효능을 AI에 묻고 제품을 추천받는 일이 늘어나면서 브랜드 인지도보다 실제 제품 평가와 사용 후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파트너는 “브랜드가 좋은 성분을 썼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다고 소비자가 믿는 시대는 지났다”며 “실제 소비자들이 제품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효능을 느꼈는지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은 기존 기업뿐 아니라 새로운 경쟁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매년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생겨나는 만큼 한번의 히트상품을 장기간 성장으로 연결하는 것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박 파트너는 앞으로 K뷰티 시장의 승자와 패자가 더욱 빠르게 갈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제는 대기업과 인디 브랜드의 경쟁이라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며 “결국 브랜드 대 브랜드의 경쟁이다. 새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하기는 쉬워졌지만 지속적으로 매출을 만들고 살아남는 기업은 점점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윤지 기자 yunto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