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성립이다" 트럼프 벌떡…하루 170억 피 말린 日 승부수 [최만수의 재팬 인사이트]

입력 2026-09-01 06:00
수정 2026-09-01 08:45


“딜 성립이다(You have a deal!).”

지난해 7월 22일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세 협상 도중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일본 측 수석 협상가였던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이 손을 맞잡자 주변의 미국 정부 관계자와 공화당 의원들이 박수를 쳤다. 옆에 있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아카자와와 포옹했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21일 펴낸 《트럼프 관세-교섭의 기록》에서 지난해 미·일 관세 협상의 막전막후를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담판 △러트닉 장관과의 물밑 협상 △마지막 승부수였던 ‘쌀 제안’ △합의 직후 미국의 발표가 실제 합의와 달라 다시 협상에 나서야 했던 과정 등이 담겼다.

일본이 만든 협상 방식은 일본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일본이 제시한 대규모 대미 투자 방식이 이후 유럽연합(EU)과 한국의 대미 관세 협상에도 참고가 됐다고 설명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일본의 투자 이니셔티브가 이후 협상의 모델이 됐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이 협상을 맡았을 당시 일본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미국산이 아닌 모든 자동차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이시바 시게루 당시 총리로부터 협상을 맡아달라는 지시를 받은 순간을 “위가 1㎝쯤 위로 올라간 듯한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시바 총리는 “뼈는 주워줄 테니까”라고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시간도 일본 편이 아니었다. 일본 자동차업계에서는 관세로 “1시간에 1억엔”, “하루에 20억엔”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호소가 정부에 전달됐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일본의 기본 전략을 ‘관세보다 투자’로 정했다. 농산물 관세를 추가로 낮추지 않는 대신 대미 투자를 확대해 미국 내 생산과 고용을 늘리겠다는 방식이었다.

협상이 거듭되면서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러트닉 장관 사이에는 개인적인 신뢰도 쌓였다. 아카자와는 책에서 러트닉을 ‘러트짱(일본식 애칭)’이라고 부른다. 러트닉은 가족 휴가를 떠나기 직전 자신의 집으로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을 불러 당초 30분 예정이던 회담을 90분간 이어갔고, 휴가지에서도 다시 전화를 걸어 협상을 계속했다.

막판에는 ‘쌀 카드’도 준비했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이를 “마지막 비책”이라고 표현했다. 이시바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자민당 농림족 인사들의 승인을 받은 뒤 미국 측에 제시할 준비를 했다. 그는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이시바 총리에게 “뼈는 주워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분수령은 참의원 선거 직후 찾아왔다. 지난해 7월 20일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하면서 이시바 정권의 기반이 약해졌다. 그는 미국 측이 “이시바 총리가 퇴진할지 모르니 기다려보자”고 판단할 가능성까지 우려했다고 털어놨다.

워싱턴에서 러트닉은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에게 “내일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딜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다음날 최종 협상에서는 투자 규모와 관세율을 놓고 직접 흥정이 벌어졌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미리 정해둔 범위 안에서 “손가락을 세워가며” 숫자를 조정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일본의 대미 투자 규모를 5500억달러로 확대하는 대신 자동차 관세를 포함한 미국의 관세를 낮추는 데 합의했다.

합의 결과 일본 자동차·부품에 적용되는 관세는 27.5%에서 15%로 낮아졌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이를 일본 자동차업계의 출혈을 멈추기 위한 ‘지혈’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그는 자동차 관세 인하를 끌어내기까지 “무덤까지 가져갈 논의”가 있었다며 일부 내용은 책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협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이 이후 발표한 대통령령에 일본 측이 합의했다고 이해했던 ‘논스태킹’ 조항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시행하면 기존 관세에 15%가 추가로 붙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곧바로 ‘연장전’에 들어가 합의 내용의 수정과 이행을 요구했다.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책에서 이번 협상을 미·일 관계의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자유무역 일변도에서 벗어나 경제안보와 공급망을 국가가 직접 챙기는 시대가 왔으며, 일본도 미국과 전략산업에 공동 투자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