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막겠다"던 3연임 제한…靑 힘 빠지자 출구 찾는 당정

입력 2026-08-31 13:28
수정 2026-08-31 13:31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법으로 막으려던 정부·여당의 구상이 사실상 멈춰 섰다. 청와대 요구에 따라 법제화를 추진하던 금융위원회는 별도의 정부안을 내지 않고 국회에 맡기는 쪽으로 돌아섰다. 더불어민주당도 직접적인 횟수 제한 대신 주주총회 의결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퇴로를 찾고 있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다음 달 2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안건에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요건을 다룬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기국회 첫 법안소위 심사 대상에서 빠지면서 법제화 논의도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 제한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주문으로 힘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며 폐쇄적인 인사 구조를 비판했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원과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지난 7월 두 가지 방안을 국회에 제시했다. 1안은 연임을 한 차례만 허용해 세 번째 임기를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이다. 2안은 최초 선임 때 과반, 첫 연임 때 70%, 세 번째 임기 때 90%를 요구하는 식으로 주총 찬성 요건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이어진 당정 협의에서는 청와대가 선호한 1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금융위가 이르면 7월 말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하고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금융위 내부에서는 처음부터 직접적인 횟수 제한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 금융회사 임원의 재직 횟수를 법으로 제한하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와 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안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금융지주 회장 선임안은 통상 90% 안팎의 찬성률로 통과된다. 찬성 요건을 80% 안팎까지 높여도 대부분 연임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정의 기류는 법제화 추진 움직임에 금융권과 시장의 반발이 커지고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서 달라졌다. 대통령 지지율까지 하락하자 금융회사 인사가 정부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며 법제화를 밀어붙일 동력이 약해졌다. 지난 7월 말로 예상됐던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도 증시 급락 여파를 이유로 연기된 뒤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가 한발 물러서자 금융위는 별도의 정부안을 내지 않고 국회에 발의된 의원 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결론을 내도록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진다. 여당에서도 최근 3연임을 법으로 금지하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청와대 추진력이 약해지자 당정이 직접적인 임기 제한에서 물러설 명분을 찾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장기 연임을 견제하는 방안까지 모두 폐기된 것은 아니다. 금융위가 임원후보추천위원회나 주총의 의결 요건을 높이는 방안을 지배구조 모범규준이나 가이드라인에 담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

발표 시기는 조율 중이지만 국정감사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지금 개선안을 발표하면 국감에서 야당에 공격할 현안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셈”이라며 “발표가 국감 이후로 밀릴 수 있지만 그때가 되면 정책 추진 동력도 더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