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오지선다형 수능은 이미 수명을 다했습니다. 32년간 출제했기에 이제는 더 낼 문제가 없다는 말까지 나옵니다.”(정미라 경기 진덕고 교사)
“서술·논술형 도입 얘기를 듣고 조선의 음서제가 떠올랐습니다. 준비시킬 여건을 갖춘 학부모의 자녀만 유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홍수연 전국학부모단체연합 공동대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서술·논술형 문항을 확대하는 방안을 놓고 교육계와 학부모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사고력과 표현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학교 수업도 바꿀 수 있다는 찬성론과 사교육을 조장해 교육 격차를 키우고 채점 공정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반대론이 맞섰다. 찬반 양측 모두 도입에 앞서 신뢰할 수 있는 채점 체계를 갖추고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둬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29~30일 경기 화성 YBM연수원에서 연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국민참여위원회 숙의토론회’에는 국민참여위원 180명이 참석해 수능 서술·논술형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찬성 측은 현행 객관식 수능이 학생의 사고 과정보다 문제풀이 기술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정미라 교사는 고난도 문항과 n수생 강세를 현행 수능의 한계로 꼽으며 “최상위권에서는 역량보다 문제풀이 스킬이 중요해진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영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평가가 바뀌면 수업도 질문과 탐구·토론 중심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반대 측은 서술·논술형이 사고력을 더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근거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맞섰다. 송미나 전남광주 하남중앙초 수석교사는 “객관식 평가 중심으로 교육받은 한국 학생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창의적 사고 평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 성과를 냈다”며 “선다형 평가가 사고력을 떨어뜨린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교육 확대 우려도 나왔다. 홍수연 공동대표는 “서술·논술형이 확대되면 채점 기준과 출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사교육이 생길 것”이라며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에 따른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쟁점은 채점이다. 서술·논술형이 수능에 도입되면 학교 수업 방식뿐 아니라 출제·채점 인력과 시험 운영 체계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수십만 명의 답안을 짧은 기간에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도 검증이 필요하다. 둘째 날 열린 소그룹 토론에서는 24개 조 가운데 19개 조가 공정하고 명확한 채점 시스템을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국교위 대입제도특별위원회는 인공지능(AI)이 답안을 1차 채점하고 교사가 검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AI 채점의 오류와 교사의 책임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참여 위원은 “AI가 점수를 매겨도 결국 학생과 학부모의 이의 제기에 책임지는 것은 교사”라고 말했다. 전문 채점관을 양성하고 성적 이의를 별도로 처리하는 기관을 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국교위는 숙의 결과를 ‘2028~2037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과정에 반영한다. 오는 10월 말 시안을 발표하고 내년 3월 말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은 “대입제도 개편은 시험 형태뿐 아니라 교육 전반의 체계를 바꾸는 것”이라며 “제기된 우려와 소수 의견까지 빠짐없이 기록하겠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