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최악 홍수에도 '해외 수색대' 꺼린 이유…'인신매매 악몽'

입력 2026-08-30 11:23


네팔과 티베트 접경지인 히말라야 산악 일대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네팔 정부가 당초 국제사회의 수색·구조 손길을 완강히 거부했던 배경으로 2015년 대지진 직후 기승을 부린 '인신매매 범죄'의 기억이 거론되고 있다.

29일 네팔 현지 매체 카트만두 포스트에 따르면 네팔 당국은 수력발전소 터널 내부 진입 수색, 유전자 정보(DNA) 분석, 법의학 조사 등 3대 특화 영역에 국한해 외국의 손길을 받아들이기로 입장을 정했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부 장관은 "도움이 절실한 개별 부문을 특정해 국제적인 공조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견이 허용된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인도, 중국, 호주 등 4개국이다. 미국과 영국, 일본,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여러 국가의 동참 제의는 반려됐다. 현지 매체들은 자국 실종자가 발생한 국가들의 끈질긴 외교적 요구가 폐쇄적이던 네팔 정부의 결정을 돌려세웠다고 분석했다. 네팔 정부 고위 관계자도 실종자 본국의 거듭된 입국 승인 요청을 고려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문호를 열었다고 전했다.

그간 네팔은 자국 치안·군 병력만으로 작전을 치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세계 각국의 구호 제안을 밀어냈다. 재난지가 중국 티베트 자치구와 맞닿은 라수와 지구라는 점에서 외교·안보적 역학 구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풀이가 나왔으나, 네팔 정부는 자국 인력의 역량을 고려한 결정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2015년 4월 발생한 대규모 지진 이후 인신매매가 들끓고 방범 치안이 붕괴했던 전례에 대한 극도의 경계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네팔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진 이듬해인 2016년 7월 중순부터 한 달간 집계된 인신매매 사건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150% 폭증했다. 이는 2014년 동일 시기의 증가 폭인 16%를 압도하는 수치다. 당시 현지 매체 히말라얀타임스는 삶의 터전이 무너진 재난민들이 도시 지역 일자리를 알선해 주겠다는 인신매매 조직의 꾐에 쉽게 빠져든다고 짚었다.

카말 타파 크셰트리 네팔 국가인권위원회 인신매매 특별조사단(NHRC-OSRT) 인권담당관은 "대지진 이후 닥친 극심한 빈곤과 생계 곤란으로 인해 여성과 미성년자가 인신매매 표적이 되는 데 가장 취약했다"며 "가난과 실업, 성별과 나이, 출신지, 카스트 계급 제도 등이 위험도를 키우는 핵심 요인"이라고 짚었다.

네팔의 지역사회개발 전문가인 시바 쿠마르 둥가나도 "대형 참사 직후 사람들은 거취가 불안해지면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극단적으로 내몰린다"며 "정치적 격변기에 지진이 터지는 바람에 당국이 인신매매 등 취약 사안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피해 복구보다 정쟁에 치중하면서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당시 대도시 범죄 수사를 총괄했던 사르벤드라 카날 경찰 간부는 "지진 타격이 극심했던 카브레, 신두팔촉, 누와코트, 다딩 등지가 범죄 조직의 주된 타깃이 됐다"며 "국경 통로와 버스 터미널, 공항 검색대 등 주요 이동 길목의 검문을 대폭 강화해 유출을 막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 수해 현장에서도 유사한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수해 집중지인 라수와와 누와콧에서 여성과 여아 약 15만7050명이 침수 피해를 겪으며 성폭력과 노동 착취, 인신매매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됐다고 집계했다.

패트리샤 페르난데스-파체코 네팔 주재 유엔여성기구 대표는 "자연재해가 덮치면 여성과 미성년자가 직면하는 생존 위협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며 "구호 물자가 고갈되면서 식량난과 필수 의약품 부족에 허덕이고 있으며, 과거 통계로도 재난 국면에서 여성 사망 위험이 남성보다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유엔여성기구는 이재민 구호와 함께 폭력 및 인신매매 위험군으로 내몰린 현지 여성 보호를 위해 200만달러 규모의 긴급 자금 지원을 국제사회에 공식 호소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