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000일 이전 설탕 덜 먹은 아기들…50년 뒤 놀라운 결과 [이지현의 생생헬스]

입력 2026-08-30 06:00
수정 2026-08-30 07:04


생후 1000일 이전에 사회적 이유로 설탕을 적게 섭취한 세대는 성인이 된 뒤 암, 치매 위험이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화도 더디게 진행됐다. 어릴 때 먹은 음식이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중국 농업대 연구진은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영국의 설탕 배급제 전후 태어난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1951~1956년 영국에서 태어난 성인 6만4761명의 암 발생률 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설계했다.

2차 세계대전 탓에 식자재 공급이 원활치 못했던 영국은 1940년 1월부터 버터, 고기 등의 사용량을 제한하기 위해 식량 배급제를 시행했다. 정부에서 설탕을 공급하던 '설탕 배급제'는 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 9월까지 이어졌다.

영국 국민식품조사에 따르면 당시 성인의 하루 평균 설탕 섭취량은 배급제를 시행하던 1953년 1분기 41g에서 배급제 종료 후인 3분기 80g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영유아기 설탕 섭취량이 성인이 된 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설탕을 적게 먹도록 실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윤리적으로 문제될 수 있어서다.

영국의 설탕 배급제는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대규모 '자연 실험의 장'이 됐다. 설탕 배급제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몇 달 차이로 설탕 섭취량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배급제가 끝나던 1953년 9월 이전에 태어난 아이들은 설탕을 적게 섭취했다. 이후 태어난 아이들일수록 설탕 섭취량은 늘었다. 이를 활용하면 어릴 때 식습관이 수십 년 뒤 어떤 영향으로 이어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이 생후 1000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 시기에 아이의 신체 장기 성장 속도가 빠른 데다 면역체계도 자리 잡기 때문이다. 음식이나 맛에 대한 취향도 이때 형성된다. 생후 1000일에 섭취한 음식이 평생 식습관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성인이 된 뒤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데엔 영국 바이오뱅크를 활용했다. 영국 국민의 유전자와 건강 상태 등을 수십년간 수집한 데이터베이스다.

분석 결과 영유아기 설탕 배급제를 오래 경험해 설탕을 적게 섭취했을 가능성이 높은 그룹일수록 유방암, 전립선암, 간암, 직장암, 폐암 등 5개 암종의 발병률이 낮았다. 간암 발병률은 69%, 전립선암은 52%, 폐암은 41%, 직장암은 40%, 유방암은 36% 낮아졌다.

설탕 섭취량은 노화와도 관련이 있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생물학적 나이가 같아도 설탕을 자유롭게 섭취해 많이 먹은 기간이 길수록 노화 속도는 더 빨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토대로 이를 파악했다. 세포가 노화될수록 염색체 끝의 텔로미어는 짧아진다.

생후 1000일간 설탕 배급제에 노출된 기간이 길어 설탕 섭취량이 적었던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노화 속도가 2.2년 느렸다. 이들은 그랜자임B 단백질 수치도 낮았다. 이 단백질은 면역계를 과도하게 썼을 때 증가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세포 노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영유아기 설탕 배급제를 경험한 사람들은 50세 즈음에도 설탕을 적게 섭취했다. 이들은 대신 건강에 도움 되는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어릴 때 만들어진 식습관이 평생 영향을 줬다는 의미다. 암 발병률이 낮아진 데엔 이런 평생 식습관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암뿐 아니다. 2024년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진은 똑같은 그룹을 분석해 영유아기 설탕을 적게 섭취한 그룹은 성인이 된 뒤 2형 당뇨병 위험이 35%, 고혈압 위험이 20%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유식을 시작하는 생후 6개월에 설탕 섭취량이 제한된 그룹에서 만성 질환 발병 위험이 가장 낮았다.

지난달엔 생후 1000일까지 설탕 배급제 영향을 받은 아이들은 알츠하이머 치매 위험이 46%, 우울증 위험이 11%, 불안 위험이 20% 낮았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영유아기 설탕을 적게 섭취한 그룹은 뇌 노화 속도도 늦어졌다. 설탕 섭취량이 제한된 그룹은 심혈관 질환 위험도 20~31% 낮았다.

영유아기 설탕 섭취량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성인기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영유아기엔 면역계나 대사 시스템 등이 만들어진다. 이때 설탕 섭취는 '생물학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유아 때 먹은 음식에 따라 평생 '식습관'도 달라진다. 어릴 때 단맛에 길들면 평생 더 단 음식을 찾게 될 수 있다.

이번 연구 결과가 '영유아에게 절대 설탕을 먹이면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설탕 배급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취지도 아니다.

다만 이들은 "인체 발달을 좌우하는 시기 잠깐의 설탕 섭취가 성인이 된 뒤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두살 이전에 섭취한 음식, 어릴 때 식습관이 평생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