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희(74)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상화가 중 하나다.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반할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색감 덕분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그가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에는 "그림이 좋다"는 입소문만으로 매일 긴 줄이 늘어섰다. 이후 여는 전시마다 작품이 모두 팔려나가는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린 김보희의 개인전 '투워즈: 빛이 있었다'는 1988년 '김보희 작품전' 이후 38년 만에 이 화랑과 함께 여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30여점 중 대부분은 작가가 사는 제주도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작가가 직접 가꾼 정원의 꽃과 열매, 매일 바라보는 바다와 석양, 그 곁을 지키는 반려견 레오가 '투워즈(Towards)' 연작 신작에 담겼다.
2층에 걸린 12폭짜리 대작 '더 데이스(The Days)'는 가로 길이만 6.48m에 달하는 그림으로, 올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바젤의 언리미티드 전시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지하 전시장에는 달빛과 새벽 등 밤의 자연을 그린 작품들이 걸렸다.
김보희는 한지와 캔버스에 동양화 분채와 물, 아교를 여러 차례 입히고 말리며 색을 천천히 스며들게 한다. 특유의 깊은 색이 여기서 나온다. 손이 많은 기법이지만, 힘들지는 않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제주에 살면서 보고 좋았던 것을 그대로 그렸다"며 "다 내가 좋아서 그린 그림"이라고 말했다. 50년 넘게 천착해온 회화라는 매체에 대해 김보희는 "정지된 화면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곳과 저곳과 그곳이 같은 순간에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을 경이롭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갤러리현대 구관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 크리스틴 선(46)의 개인전 '달 마음(Moon Mind)'이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박스 공간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지만, 갤러리에서 여는 전시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농인(聾人) 작가인 그는 미국 수어와 악보, 문자를 활용해 소리와 언어, 소통의 구조를 파고드는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해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영국 미술지 아트리뷰가 꼽은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서 34위에 올랐다.
이번 전시에는 독특한 형태로 재단한 캔버스에 그린 '셰이프드 캔버스' 회화와 드로잉 등 40여 점이 걸렸다. 미국 수어에서 관자놀이를 가리키거나 두드리는 표현이 '마음'을 뜻한다는 데서 출발한 작품들이다. 예컨대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마인드 스트롱'은 묵직해보이는 검은 구(球) 형상 안에 마음의 단단함을 담은 작품이다.
구의 위쪽에는 '마인드(MIND)', 아래 좌우에는 '스트롱(STRONG)'이 새겨져 있다. 걱정과 두려움, 기쁨 같은 감정이 수없이 오가도 마음의 본질은 그대로라는 의미다. 그는 "마음은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품지만, 그런 생각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구의 형태로 존재한다"며 "미국 수어에서 양손 주먹을 쥐는 동작으로 '스트롱'을 표현하는 것에 착안해 검은 구 아래 좌우에 '스트롱'을 두 번 적었다"고 말했다. 두 전시 모두 10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