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까지 한국 영화가 누적 매출액과 관객 수 모두 전년 동기 대비 반등에 성공했지만, 이는 일부 초대형 텐트폴 작품의 독식에 의존한 '착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극장가가 관객 수 감소라는 뉴노멀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적 양극화가 한층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4일 발표한 '2026년 7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7월 극장 전체 누적 매출액은 6929억원으로 전년 동기(5227억원)보다 32.6% 증가했다. 누적 관객 수 역시 6786만 명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 나타난 수치는 가파른 회복세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특정 작품으로의 쏠림이 극심했다. 1~7월 누적 박스오피스 상위 4개 작품('왕과 사는 남자', '군체', '호프', '살목지')이 모두 한국 영화였으며, 이들이 전체 한국 영화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특히 2월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누적 매출 1632억원(관객 1692만 명)을 끌어모으며 단독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이어 7월에는 나홍진 감독의 SF 대작 '호프'가 한 달간 417억원을 벌어들이며 당월 한국 영화 매출의 71.5%를 홀로 맡았다. 소수의 초대형 흥행작을 제외하면 다수의 중소 영화는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한국 시장의 반등은 최근 영진위가 함께 발간한 '2025년 세계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나타난 세계 영화계 흐름과는 대비된다. 글로벌 극장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티켓 가격 인상으로 관객 수 감소를 상쇄하는 '더 적은 관객, 더 높은 관람료'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다.
팬데믹 이전 대비 관객 수 회복에 성공한 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일본 등 극소수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영화 시장은 정체기를 겪고 있다. 글로벌 제작 환경 역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공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면서 극장 상영작의 가뭄 현상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소수 텐트폴의 착시 효과가 사라지면 한국 역시 외형적 반등 뒤에 극심한 침체가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공급 감소 속에서 중소 규모 영화의 자생력이 완전히 무너질 경우, 극장 체인과 제작 생태계 전체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위기감은 당장 올가을 극장가에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통상 여름 시즌이 영화계 최고 대목으로 꼽혀왔으나, 올해는 7월 29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8월 5일 개봉한 '오디세이' 등 헐리우드 대작들과의 직접적인 정면승부를 피하기 위해 다수 한국 영화가 개봉을 9월로 미루면서 '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이지원 감독의 '비광'이 9월 2일, 김도영 감독의 '인턴'이 9월 16일로 상영 일정을 확정한 상황이다. 이어 추석 연휴 직전에는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와 최국희 감독의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동시 출격을 준비 중이며, 백종 감독의 '부활남: 더 레드' 역시 9월 개봉 대열에 합류했다. 여기에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11월 6일 넷플릭스 공개에 앞서 9월 23일 극장에서 선개봉한다.
그 결과 다채로운 장르적 색채를 갖춘 한국 작품들이 9월 극장가에 대거 집결하며 관객에게 다채로운 관람 선택지를 제공하게 됐다.
문제는 한정된 관객 파이를 나눠 가져야 하는 현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입소문이 집중되는 특정 상위작으로 관객 쏠림이 가시화되면, 결국 어느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소모전이 될 위험이 크다"며 "개봉 초반 스코어에 따라 극장 스크린 확보와 흥행 성패가 수직 하락할 수 있어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여러 작품이 티켓 파워를 나눠 가진 채 동반 부진에 빠지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한가위 연휴를 겨냥한 기대작은 손익분기점 도달 기준선이 관객 400만 명 안팎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확실한 재미와 입소문을 얻지 못한 작품은 티켓 파워를 나눠 가진 채 동반 부진에 빠지는 소모전으로 내몰리거나, 단 한 편의 초대형 흥행작에 밀려 손익분기점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점멸하는 '치킨게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2023년 추석 대목 당시에도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굵직한 대작이 일제히 개봉했으나 모두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했다. 외화 대작을 피하려다 한데 모인 자국 작품들이 과거의 실패 잔혹사를 되풀이할지,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며 상생을 도모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