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독 계절의 기억이 없다. 초록이 짙어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변화를 지켜보는 대신 집과 병원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여름 풍경 대신 병원 곳곳을 관찰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입원 기간 산책은 병원 내부에서만 가능했다. 건물의 복잡한 구조를 파악하며 걷는 일이 그나마 소일거리였고, 검사를 위해 응급실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낯선 공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병실에서는 이 거대한 공간이 감정 없는 기계처럼 느껴지곤 했다.
병원에 머물며 자주 떠올린 곳이 있다. 핀란드 건축가 알바르 알토와 아이노 알토가 설계한 파이미오 요양원(Paimio Sanatorium)이다. 1933년 핀란드 남서부 파이미오 지역에 문을 연 이곳은 결핵 환자를 위한 시설이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 신선한 공기와 충분한 휴식과 햇볕은 환자의 회복을 돕는 중요한 치료 요소로 여겨졌다.
알토는 요양원 건물 자체를 치유의 도구로 삼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한 이 건물은 모더니즘 양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곳곳에 곡선을 사용해 숲과 부드러운 관계를 맺는다. 건물의 핵심인 병동은 햇빛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데 집중했다. 환기를 원활히 하기 위해 한쪽에 복도를, 다른 한쪽에 병실을 배치하는 편복도 형식으로 설계됐다. 이 때문에 병동은 한 방향으로 매우 길게 뻗은 형태를 갖추게 됐다. 병실의 창은 하루 대부분을 누워 지내는 환자의 시선을 고려해 하단을 최대한 낮췄고, 외부의 바람이 한 번 걸러진 뒤 들어오도록 이중창을 설치했다. 7층에는 120여 명이 나란히 누워 햇볕을 쬘 수 있는 테라스도 뒀다. 햇빛과 공기, 숲의 풍경까지 건축의 일부로 끌어들여 환자의 치료를 돕고자 했다.
파이미오 요양원의 진가는 가구와 조명, 색채 같은 작은 요소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알토는 색채가 환자의 치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로비와 계단을 잇는 선명한 노란색 바닥으로, 공간 전체에 풍부한 활기를 만들어낸다. 자연광을 가장 따뜻하게 받아 공간 전체로 번지게 하는 색상이었을 것이다. 이런 세심한 색의 선택은 병실에서 극대화된다. 누워 지내는 환자가 가장 자주 바라보는 곳이 천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천장에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청록색을 입혔다.
이 외에도 곳곳에 환자를 위한 배려가 숨어 있다. 세면대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최소화되도록 설계했고, 벽장 모서리는 부드럽게 처리했으며, 문손잡이는 옷소매가 걸리지 않도록 고안했다. 다양하게 적용된 목재는 차갑기 쉬운 의료시설에 시각적 온기를 더했다. 그리고 이 요양원만큼이나 유명한 파이미오 의자가 있다. 자작나무로 만든 의자는 등받이와 좌판이 하나의 곡면으로 이어져 환자가 더 편히 호흡할 수 있는 기울기를 갖췄다.
아픈 사람이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평소와 다르다. 건강할 때는 무심히 지나쳤을 것들이 몸이 불편할 때는 크게 다가온다. 병원에서 파이미오 요양원을 자주 떠올린 것은 내 몸의 필요가 불러낸 기억이었다. 요양원의 수많은 결정에는 언제나 환자의 몸이 놓여 있었다. 설계자에게 병원은 기능을 해결해야 할 시설이지만, 환자에게는 하루 대부분을 견뎌야 하는 생활의 배경이다. 치료와 치유의 공간에서 디자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알토의 건축은 이미 오래전에 그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