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체된 K게임과 다른 '닌텐도의 힘'

입력 2026-08-28 17:56
수정 2026-08-29 04:19
지난 27일 오전 10시. 서울 한강대로에 있는 게임가게 대원샵 입구 근처엔 50여 명이 긴 줄을 서 있었다. 대원샵은 한국에서 일본 닌텐도 기기와 게임을 공식 수입·유통하는 대원미디어의 오프라인 매장이다. 20~30대로 보이는 이들은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입구 밖 복도에서 손부채질을 해가며 버텼다. 연예인 사인회라도 하나 싶어서 대기자에게 슬쩍 물어보니 “닌텐도 오픈런이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익숙하고 당연한 일을 왜 물어보냐는 뉘앙스였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닌텐도가 ‘닌텐도 스위치2’를 출시한 건 지난해 6월이다. 벌써 1년2개월여가 지났는데도 ‘닌텐도 품귀 현상’이 여전하다는 게 놀라웠다. 대기 줄 맨 앞쪽에는 ‘오픈런 대기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그만큼 평소에도 오픈런이 잦다는 얘기다. 안내문에는 ‘날마다 상품이 입고되지 않을 수 있으니 무조건적인 오픈런은 삼가달라’ ‘노숙, 오픈런 등 행위는 권장하지 않지만 대기한다면 이 위치에서 기다려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닌텐도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현상이다. 역대 전 세계 콘솔 게임기 누적 판매량 2위(닌텐도 스위치), 3위(닌텐도 DS)가 모두 닌텐도 제품이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부동의 1위인 소니와 팽팽하게 맞선다. 최근에는 닌텐도 스위치2의 인기에 힘입어 닌텐도가 분기 기준 콘솔 게임기 판매량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닌텐도 스위치2는 출시 9개월 만인 올해 3월까지 총 1986만 대 팔렸다. 당초 회사가 내건 목표(1900만 대)를 이미 넘어섰다.

이렇다 보니 닌텐도 구하기는 요즘도 쉽지 않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 닌텐도 스위치2를 웃돈을 주며 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다음달 1일 가격 인상을 앞두고 더욱 심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올라도 살 사람은 산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 게임업계에선 꿈같은 일이다. 최근 국내 게임산업의 현실을 다룬 ‘위기의 게임산업’ 시리즈를 보도하는 내내 업계에선 “아프지만 정신 차리고 달라져야 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 게임사 임원은 “닌텐도는 성공 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신작 성공기를 써냈다”며 “국내에서도 닌텐도가 글로벌 팬덤을 확보하며 성공한 과정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게임이 닌텐도처럼 아무리 비싸도, 사는 과정이 번거로워도 꼭 하고 싶은 존재가 될 방법은 없을까. 성장의 덫에 걸린 K게임의 존재감을 키우려면 업계 관행부터 달라져야 한다. 더 많은 K게임사가 ‘히트작 따라하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