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조980억달러. 한국 돈으로 약 5경5034조원. 세계 금융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 정부가 짊어진 빚이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1달러짜리 지폐를 쌓아 올리면 달까지 여섯 번을 왕복하고도 남는, 아득하고도 비현실적인 규모다.
국가 부채는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으로 충당할 수 없는 지출을 국채를 찍어 메운 결과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뿌린 ‘헬리콥터 머니’까지 미국의 재정적자는 수십 년간 누적돼 왔다. 메디케어 등 의무지출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새 빚(국채 발행)을 내 기존 빚의 이자를 갚기도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2026회계연도 들어 7월까지 이자 지출은 963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국방예산을 웃도는 규모다.
막대한 국가 부채는 지난주 미국의 30년 만기 국채 금리를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치(연 5.336%)로 밀어 올렸다. 28일 오후 5시 기준 연 5.199%에 거래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가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국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AI) 하이퍼스케일러까지 미 장기 국채의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 천문학적인 데이터센터 투자에 나선 빅테크가 고금리에 초장기 회사채 발행을 쏟아내면서다. 전례 없는 기축 통화국과 하이퍼스케일러 간 자본 쟁탈전이다.
미국 국채 금리는 세계 자금의 기준 가격표다. 미국이 돈을 빌리는 값이 오르면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의 조달 금리도 덩달아 뛴다. 이는 세계 경제 성장을 짓누르는 요인이다. 당장 ‘순환 금융 시스템’에 포함된 AI 업체 중 한두 곳만 무너져도 AI 사이클이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통제하기 어려운 부채는 화폐의 권위도 갉아먹는다.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 의존도를 서서히 낮추고 있고, 투자자들은 금과 암호화폐 등 대체 가치 저장 수단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달러가 당장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낮지만 ‘달러 패권’은 예전만큼 강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시장이 바라는 것은 중동전쟁 종결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인플레이션과 재정 부담 우려가 커져 금리도 내려가기 어렵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재정 건전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재정 패키지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6%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3%로 낮추는 게 목표다. 시장의 기대는 크지 않다. 이미 불어난 의무지출을 줄이기도, 트럼프 행정부가 약속한 감세를 뒤집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채 딜레마가 세계 경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美, 빚 갚으려 더 비싼 빚 낸다…1년치 이자만 1500조원
국가부채 40조달러…흔들리는 달러패권미국이 빚을 갚기 위해 더 비싼 빚을 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코로나19 확산 전후 저금리로 발행한 국채가 대규모로 속속 만기를 맞지만 재정적자는 줄지 않아서다. 신규 국채를 사줄 투자자는 이전보다 높은 이자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국채가 안전자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낮은 금리에도 잘 팔리던 시대가 저물면서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1주일 새 부채 510억달러 증가28일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 연방 부채는 지난 25일 40조980억달러(약 5경5435조원)에 달했다. 이달 18일 40조470억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40조달러를 넘어선 뒤 1주일 만에 510억달러(약 71조원) 불어났다. 2017년 20조달러에 못 미치던 부채가 10년도 되지 않아 두 배가 됐다.
더 큰 문제는 부채에 붙는 이자가 비싸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026∼2028년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 고정금리 국채는 약 8조5000억달러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물량을 기존보다 2%포인트 높은 금리로 전액 차환하면 2028년까지 미국 정부의 이자 부담은 1700억달러(약 234조원)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금리 차환은 미국 연방 예산을 잠식하고 있다. 2026회계연도 첫 10개월(2025년 10월~2026년 7월) 이자 지출은 9630억달러(약 1330조원)로 1년 전보다 14% 늘었다. 2026회계연도 전체 이자 지출은 1조390억달러(약 150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 예산보다 많다. 같은 기간 세입 4조4850억달러의 21.5%가 이자로 나간 셈이다. 미 정부의 재정 적자는 지난해 1조7700억달러에 달했고, 올해 2조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거릿 스펠링스 초당적정책센터(BPC) 회장은 “연방 부채가 생활비를 끌어올리고 다른 지출과 투자를 밀어내며 미국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40조달러라는 숫자에 특별한 마법은 없다”며 “미국은 성장으로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이자 비용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빨리 성장하면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CBO 전망에도 경제성장률이 반영돼 있지만, 세금을 올리거나 사회 보장·의료·국방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향후 10년간 부채 비율은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미 국채 금리를 시장에 맡기면 이자 비용과 주택담보대출, 회사채 금리가 모두 올라 성장을 누른다. 반대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하면 물가 불안과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커진다. 투자자는 달러 가치 하락 위험까지 반영해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할 수 있다.
여기에 세계 장기 자금을 놓고 미국 정부와 민간 기업의 경쟁까지 거세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를 확대하는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가 회사채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율리아 알렉세예바 미션스퀘어인베스트먼츠 채권부문장은 “회사채 홍수가 미국 장기 국채와 투자 수요를 놓고 경쟁하며 장기 금리에 추가적인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흔들리는 달러 패권이에 따라 미 재무부가 꺼낸 카드가 국채 바이백(재매입)이다. 미 정부는 다음달 9일부터 바이백 규모를 회당 20억달러에서 40억달러로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월가는 재무부의 이례적인 가격 개입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베선트 장관이 헤지펀드 트레이더이던 시절 그의 멘토였던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인위적으로 국채 금리를 누르는 것은 위험을 키운다”며 “40억달러라는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달러 패권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1999년 71%에서 올해 1분기 57%로 낮아졌다. 지안 마리아 밀레시페레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외국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 매입을 의미 있게 늘릴 가능성은 작다”며 “민간 투자자 비중이 커질수록 미국의 조달 비용은 글로벌 위험 선호와 지정학적 변화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달러가 단시간 내에 기축통화 지위를 내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이 누려온 달러 특권은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달러가 예전만큼 압도적이지는 않겠지만 더 작은 언덕의 왕으로는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미/김주완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