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8월 28일 오후 2시 한국경제신문의 투자 정보 유료 플랫폼인 '한경 프리미엄9'(www.hankyung.com/premium9)에 게재됐습니다. 한경 프리미엄9을 구독하시면 더 많은 단독 기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대미(對美) 투자 1호인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립 비용을 25%가량 높이라고 일방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우리 정부에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립 사업의 총투자비용이 198억달러(약 27조원)에서 250억달러(약 34조원)로 25%가량 늘어난다고 통보했다. 증가분 약 50억달러는 한국의 연간 대미 투자액(200억달러)의 4분의 1에 달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비용 증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주 방미 때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다.
한편 일부 미국 매체는 미 정부가 수입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에는 관세 감면 또는 면제 혜택을 줄 것으로 보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대미 투자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美 "텍사스 발전소 투자금 25% 늘려라" 일방 통보
양국 '기울어진 운동장' 우려 속…韓 통상라인 교체 등 혼선 빚어미국이 한국의 유력한 1호 대미 투자 프로젝트인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7조원가량을 추가 투입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증액 자체보다 미국이 원가 상승 내역 등 납득할 만한 증액 사유를 소명하지 않은 점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수십억~수백억달러짜리 국가 간 투자 프로젝트에서 검증조차 쉽지 않은 ‘백지수표식 청구서’가 날아든 셈이다. 한국은 10년간 2000억달러를 투자해야 하는데 협상의 첫 단추부터 철저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끼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깜깜이 증액 요구28일 정부와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최근 미국 정부와의 화상회의에서 텍사스 프로젝트 투자 비용을 갑작스럽게 250억달러로 증액하라는 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불과 얼마 전까지 양국이 공유한 기준선인 198억달러를 바탕으로 국내 절차에 따른 ‘상업적 합리성’ 검토를 마친 상태였다. 총투자 비용이 늘어나면 프로젝트의 재무 모델과 사업성이 달라지고, 재검토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1호 투자처를 9월 중 발표하자는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투자 비용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발전소 용수 문제 때문에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간략한 설명만 보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의 증액 범위에 깎을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부 보고가 어려울 정도로 자료가 충실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그동안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협상하는 내내 미국 측의 불성실한 자료 제공으로 속앓이했다. 면밀하게 상업적 합리성을 가늠하고 국내 보고 절차를 밟으려면 사업 내용과 구조, 미확정 리스크 요인 등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자료가 부실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추가 자료 제공을 요청해도 미국 측은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
1호 프로젝트 증액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대미 투자의 기본 구조는 지분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정한 이자율에 따라 일정 기간 원리금을 회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추가 투자로 사업성이 개선돼 원리금이 더 잘 회수된다면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투자자의 최종 의사 결정을 앞둔 채 이유도, 설명도 없이 금액을 늘려달라는 건 적어도 민간 기업 간 거래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 이자율 놓고도 막바지 줄다리기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번주 대미 투자의 수익 배분 방식과 기준 이자율을 놓고도 치열한 협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업적 합리성의 기준이 되는 이자율(수익률)은 한미전략투자법 시행령상 미국 20년 만기 국채 금리(연 약 5.2%)에 가산금리를 더해 정해진다. 이자율이 이보다 낮으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승인을 받아야만 투자할 수 있다.
정부로선 1호 프로젝트부터 상업적 합리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산자중기위 위원장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야당이 맡고 있는 점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미국과 협의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자율을 끌어올리려는 이유다.
미국 정부는 이번에 한국에 수백억달러 규모 프로젝트를 묶은 ‘1차 대미 투자 패키지’ 공개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급함이 반영된 요구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대미 투자 총액인 2000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모두 밝히라는 게 미국의 요구다.
미국의 압박 강도가 세지는 상황에서 국내 대미 투자 조직은 흔들리는 모양새다. 최근 대미 투자 집행과 투자 이후 관리를 담당하는 한미전력투자공사의 초대 전략투자본부장은 임명된 지 두 달여 만에 사의를 밝혔다. 대미 투자 관련 실무를 맡던 박정성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최근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갑작스러운 직권면직 사태 여파로 후임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미 투자 결재 라인인 후임 통상차관보는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빨리 투자를 확정하라는 미국과 국회 및 다른 부처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압박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노유정/김대훈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