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더 가져오겠다더니…'힘' 빠진 경찰

입력 2026-08-28 17:37
수정 2026-08-29 04:43
경찰이 검찰의 수사 정보 독점을 깨겠다며 추진한 권한 확대 구상이 1년 만에 사실상 좌초됐다. ‘장윤기 사건’에 이어 ‘제주 실종 사건’까지 불거지며 경찰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 권한 확대를 요구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결과다. 특정금융정보 접근권과 스토킹·가정폭력 사건 청구권은 추진 일정조차 잡지 못했고, 공정거래·자본시장 사건은 경찰의 희망과 달리 중대범죄수사청에 고발·통보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검찰 권한, 분산 없이 중수청으로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해 8월 수사 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을 통해 제시한 공정거래법, 특정금융정보법, 스토킹·가정폭력처벌법 등 주요 제도 개선 과제는 무기한 연기됐다. 경찰은 당시 중대 불법 거래가 검찰에만 고발·통보되는 구조를 조정하고 특정금융정보 제공에서 검·경 차등을 없애 경찰도 중요 수사 단서와 정보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스토킹·가정폭력 사건의 임시·잠정 조치를 경찰이 법원에 직접 청구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로드맵 추진은 1년 만에 동력을 상실했다. 가장 상징적이던 주요 불공정거래 사건의 고발·통보 확보는 이미 무산됐다. 이달 4일 개정된 자본시장법과 공정거래법·하도급법·가맹사업법·대규모유통업법·대리점법 등 6개 법률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통보 대상을 ‘검찰총장’에서 ‘중수청장’으로 변경했다. 경찰의 바람과 달리 ‘경찰’ 또는 ‘수사기관장’은 병기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막 개정된 법에 또 개정을 요구할 수는 없다”며 “먼 훗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 제공에서 검·경 간 차등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지난 24일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에는 이런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은 특정금융거래 정보의 제공·관리 주체를 ‘검찰’에서 ‘중수청’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찰은 아직 국회에 별도 의견을 내지 않았으며, 검토한 뒤 필요할 경우 의견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스토킹·가정폭력 사건의 직접 청구권은 더욱 진척이 없다. 1년이 지나도록 관련 법안이나 구체적인 개정 논의가 없어 의견 개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공룡 경찰’ 우려에 커지는 통제론경찰 비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다 잇단 부실 수사와 일탈이 불거지면서 경찰을 둘러싼 논의는 빠르게 통제 강화로 옮겨가고 있다. 장윤기 사건에서 부실수사와 경찰관의 증거 인멸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제주 실종 사건에서는 담당 경찰관의 허위 종결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경찰 개혁에 방점을 찍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경찰이 앞으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될 것 같다”며 국무총리실에 별도 경찰개혁기구 구성을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남희 의원을 단장으로 한 경찰개혁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정치권에서는 국가경찰위원회 권한 실질화와 정보경찰 축소 등 경찰 권한을 분산하는 구조개혁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지난달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의 연고지 유착을 막기 위한 순환인사제와 가족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상피제를 도입하고, 국가수사본부장 직속 중요직무범죄수사대를 신설하기로 했다.

경찰이 주춤한 사이 검찰이 독점한 일부 권한은 중수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권 분산을 목표로 한 형사사법 개편 과정에서 중수청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법대 교수는 “검찰의 정보 독점을 해소하려던 개편이 중수청의 정보 독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권한과 정보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