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끝내고 컴백 스토리를 쓸 기회가 왔습니다. 한국은 일본을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각종 공급망을 함께 설계할 파트너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10년 만에 일본 경제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세계 경제의 질서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본이 재도약할 기회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성정민 맥킨지 일본사무소 파트너(사진)는 최근 도쿄 롯폰기의 맥킨지 오피스에서 한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의 게임 규칙은 20~30년마다 바뀐다”며 “세계화·자유무역·저금리 시대에서 새로운 다극화 질서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과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일본에 새 판이 깔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 측면에서는 피지컬 AI에 주목했다. 일본은 감속기, 모터, 컨트롤러 등 로봇 핵심 소재와 부품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성 파트너는 “범용 생성형 AI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늦었지만 피지컬 AI에서는 일본의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일본 산업의 부활은 한국에는 위협이자 기회다. 일본이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 로봇, 배터리, 원자력은 한국의 주력 산업과 상당 부분 겹친다. 개별 산업에서는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밸류체인 전체로 보면 협력할 공간이 크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특히 최근 세계 질서가 다극화하고 각국이 특정 국가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성 파트너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싶어 하는 국가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각자의 제조 역량을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다.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한국은 메모리와 제조에 강점이 있어 밸류체인 협력이 가능하다. 양국이 보유한 제조 현장 데이터를 활용해 로봇과 피지컬 AI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것도 협력 분야로 꼽았다. 그는 “소형모듈원전(SMR)과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한 분야에서도 양국이 함께 성공 사례를 만들면서 시장 자체를 키울 수 있다”며 “AI·사이버보안·원자력 안전 분야에서 국제표준을 함께 주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