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 주둔군 추가 감축을 검토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의 대미 외교정책 지지 여부와 미군 주둔 여건까지 들여다보면서 이번 재검토가 사실상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한 ‘줄 세우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 고위 외교관들은 27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과 만날 예정이다. 콜비 차관은 나토 회원국 대사들에게 미국이 진행 중인 유럽 내 미군 배치 재검토 상황을 설명할 계획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6월 유럽 주둔 미군의 배치를 6개월에 걸쳐 재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이 방위의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따른 것이다. 현재 유럽에는 약 8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일부 병력 철수를 발표하고 나토 방위계획에 투입되는 미군도 줄였다.
유럽 각국의 관심은 이번 재검토가 추가 감축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쏠려 있다. 특히 이번 재검토를 주도하는 인물이 콜비 차관이라는 점도 유럽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콜비 차관은 미국이 유럽에 투입하는 군사적 자원을 줄이고 중국 견제 등 다른 전략적 우선순위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한 유럽 당국자는 “이것이 실제로 결론을 내기 위한 검토인지, 아니면 이미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절차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미국이 많은 동맹국을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올여름 나토 회원국에 보낸 문서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이 회원국에 전달한 문서에는 유럽에서 미군의 접근권과 기지 사용권, 영공 통과권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 목표로 담겼다.
나토 회원국은 각국의 국방비와 군사전략, 무기 조달 정책뿐 아니라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를 조사하는 설문지도 받았다. 미국은 설문에서 “미군의 접근권과 기지 사용권, 영공 통과권에 제한을 두고 있는가”라며 “제한이 있다면 이를 완화하거나 없앨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대서양 양안의 방위산업 협력을 저해하는 규제에 반대할 의향이 있는지도 질의했다. 특히 유럽과 중동, 서반구 등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는지 묻는 항목도 포함됐다.
이에 한 유럽 외교관은 미국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서 미군 기지 문제를 정치적 입장과 연결하는 것은 대서양 동맹을 지나치게 ‘거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미군 주둔을 위해 유럽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유럽 당국자는 “일부 동맹국이 미군 주둔과 기지 사용 조건을 개선하겠다며 미국 측에 제안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은 일단 자체 방위 강화 의지를 부각하며 미국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한노 페브쿠르 에스토니아 국방장관은 “유럽이 자체 방위를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미국 측 설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