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공사비가 가파르게 뛰면서 주택 공급의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정비사업의 평균 공사비는 4년 만에 50% 넘게 상승했고, 올해 시공사 선정에 나선 주요 재건축 단지도 3.3㎡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공사비를 제시하고 있다. 서울시가 용적률을 높여 사업성을 보완하고 있지만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동시에 오르면서 인센티브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주거환경연구원 등에 따르면 서울 정비사업장의 3.3㎡당 평균 공사비는 2021년 578만원에서 2022년 673만원, 2023년 750만원, 2024년 842만원을 거쳐 지난해 890만원까지 올랐다. 4년 만에 약 54% 상승했다. 올해는 아직 연간 평균치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개별 사업장에서 이를 넘어서는 예정 공사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6단지는 입찰 당시 3.3㎡당 예정 공사비를 950만원으로 제시했고, 지난 6월 DL이앤씨를 총공사비 1조2868억원에 시공사로 선정했다. 10단지는 990만원, 13단지는 980만원을 제시했다. 목동처럼 수천 가구 규모의 대단지 재건축에서도 3.3㎡당 1000만원이 사실상 눈앞까지 온 것이다. 특히 목동10단지는 4248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예정 공사비만 2조6135억원에 달한다.
초고층·고급화 경쟁이 벌어지는 한강변에서는 공사비가 이미 3.3㎡당 10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광장아파트 38-1구역 조합은 지난 6월 시공사 입찰 예정 공사비로 3.3㎡당 1590만원을 제시했다. 총 4470억원 규모다.
직전 최고 수준이던 여의도 목화아파트의 1370만원보다 16% 높다. 광장아파트는 최고 52층, 414가구로 재건축하는 초고층·고급 사업장이어서 서울 전체의 일반적인 공사비로 볼 수는 없지만 정비사업 공사비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를 보여주는 유의미한 사례다.
4년 새 54%↑…평당 1000만원 시대 눈앞공사비 급등은 조합의 사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재건축은 새로 짓는 주택 가운데 조합원 몫을 제외한 일반분양 물량을 판매해 공사비와 각종 사업비를 충당하는 구조다. 공사비가 늘어나는 만큼 일반분양 수익을 더 확보하거나 조합원이 추가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특히 기존 용적률이 높은 비강남권 노후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다. 이미 토지를 고밀도로 이용하고 있어 재건축 과정에서 새로 늘릴 수 있는 가구가 적으면 일반분양 수입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곳곳의 1980~1990년대 아파트 단지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럭키아파트는 855가구 규모로 용적률이 229%다. 앞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할 경우 용적률을 얼마나 추가로 확보해 일반분양 물량을 늘릴 수 있느냐가 사업성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서울시는 이런 단지의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성 보정계수’를 도입했다. 지가와 기존 주택 규모, 과밀 정도 등을 감안해 허용용적률 인센티브를 최대 두 배까지 늘려주는 제도다. 시행 1년여 만에 57개 정비구역에 적용됐고 이 가운데 95%인 54곳이 강북·서남권이다. 적용 구역에서는 일반분양 물량이 구역당 평균 47가구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평구 불광미성아파트가 대표적이다. 기존 1340가구에 용적률이 227%로 높은 단지지만 허용용적률 완화와 사업성 보정계수 1.14를 적용해 용적률을 299.78%까지 높이고 최고 40층, 1662가구로 재건축하는 정비계획이 통과됐다. 규제를 풀어 일반분양 물량을 늘려 사업성을 높인 사례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사업 수익을 공사비가 다시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분양 가구가 수십 가구 늘더라도 전체 연면적에 적용되는 3.3㎡당 공사비가 수백만원 오르면 총공사비 증가액은 수백억~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 용적률 인센티브만으로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단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철근·전선까지 줄줄이 올라…공사비지수 5.5%↑최근 공사비 상승에는 철근·전선 등 자재비와 인건비, 금융비용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8.22로 전년 동월보다 5.5%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일반철근 생산자물가지수는 8.6%, 시장가격지수는 11.8% 올랐다.
전기·설비 자재 가격도 뛰고 있다.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이 고시한 이달 국내 전기동 가격은 t당 2107만8000원으로 지난해 11월보다 35.1% 상승했다. LS전선의 올 상반기 나동선 내수 판매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45% 넘게 올랐다. 철근과 전선 등 건물 곳곳에 들어가는 주요 자재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시공사의 원가 부담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인건비와 금융비용이 더해진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조합이 부담하는 이주비와 사업비 대출 이자가 불어난다. 시공사 역시 수년 뒤 원자재 가격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입찰 단계부터 향후 상승 위험을 공사비에 반영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실제 사업 진행 속도도 더디다. 서울시 자료를 인용한 최근 집계에 따르면 서울의 300가구 이상 정비사업지 336곳 가운데 현재 공사 중인 곳은 32곳에 불과하다. 북아현2구역 등을 포함한 27곳은 2020년 이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고도 아직 착공하지 못했다. 공사비뿐 아니라 조합 갈등과 이주비 대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인허가도 줄었다…공사비 급등, 공급 일정 늦추나서울의 주택 공급 선행지표 역시 좋지 않다. 국토교통부 주택건설실적통계에 따르면 2023~2025년 서울 주택 인허가는 총 13만2181가구로 직전 3년인 2020~2022년 18만3055가구보다 5만874가구(27.8%) 감소했다.
인허가 이후 실제 착공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병목이 나타나고 있다. 2020~2022년 서울 인허가 물량은 18만3055가구였지만 이후 3년간 착공 물량은 9만1490가구에 그쳤다. 인허가와 착공 통계가 개별 사업을 일대일로 추적한 수치는 아니지만 공급 파이프라인이 착공 단계에서 크게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 1~5월 서울 주택 준공 물량도 1만3111가구로 전년 동기보다 41.6% 감소했다.
지난 6월 민간 건설수주가 전년 동월 대비 41.5% 감소한 것도 부담이다. 다만 전체 민간 건설수주 수치인 만큼 이를 서울 주택공급 감소와 직접 연결할 수는 없다. 공사비와 PF, 금리, 분양시장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건설사의 신규 사업 판단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높아진 비용은 분양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의 최근 1년 평균 분양가는 3.3㎡당 6208만6000원으로 5월 6355만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HUG 통계는 7월 한 달 신규 분양 단지가 아니라 직전 12개월 동안 분양보증서가 발급된 사업장의 평균이다.
정비업계에서는 공사비 상승의 충격이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높은 일반분양가를 받을 수 있고 일반분양 물량이 충분한 핵심지역은 공사비가 올라도 사업을 이어갈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기존 용적률이 높거나 사업 규모가 작고 주변 분양가격이 낮은 지역에서는 추가분담금이 급증할 경우 주민 동의를 얻는 것부터 어려워질 수 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