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2층 태극홀. 국군사관학교 창설과 교육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공청회는 시작 전부터 고성과 항의로 뒤덮였다. 국방부 발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관학교 동문들이 단상 앞으로 몰려가 진행 방식에 반발했고, 방청석에서는 "규백이 오라 그래"라는 고성까지 터져 나왔다.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등 각 군 사관학교 동문들은 국방부가 준비한 발표자료를 두고 강하게 항의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 발표를 생략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했고, 사회자가 착석을 요청했지만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찬성 측에서 "깡패들이 와서 난장판이야"라는 말이 나오자, 반대 측에서는 "누가 깡패야, 이 XX야"라는 욕설로 맞받았다. 공청회장은 국군사관학교 창설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라기보다 사관학교 통합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한 현장에 가까웠다.
오후 2시 공청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뒤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책 총괄인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불참하면서 대신 행사를 주관한 김홍철 국방정책실장이 환영사에서 "국군사관학교 창설은 단순히 학교 하나를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방교육의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적 과제"라고 설명하자 방청석 곳곳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가장 큰 충돌은 박판준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이 단상에 오르면서 벌어졌다. 박 회장은 국방부가 총동창회 인사말을 건너뛴 데 항의한 뒤 마이크를 잡고 "현 정부가 국방안보를 파괴하는 사관학교 폐교 현장을 전달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관학교 출신들은 울분에 차 있다"며 "깡패는 여기서 울분을 토하는 분들이 아니고, 이 사관학교를 그냥 폐교하려는 정부가 깡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이 끝나자 장내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도 반발했다. 이범림 해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은 국방부가 공청회 하루 전 3군 사관학교 통폐합과 기존 부지 내 기념관·기념비 조성 계획을 발표한 것을 두고 "통폐합을 기정사실화한 요식행위"라고 비판했다. 황성진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도 "정부가 사실상 방침을 정해놓은 것 아니냐"고 했다.
김홍철 실장이 "충분히 의견을 들었으니 이제 정책설명회를 하고 사관학교 출신답게 건설적인 대화를 하자"고 말하자 다시 항의가 터졌다. 특히 '사관학교 출신답게'라는 표현에 방청석이 술렁였고, 김 실장은 "욕하지 말라. 욕은 나중에 따로 하라"고 제지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발언도 공청회장을 달궜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왜 공청회에 장관 아드님을 안 모시고 왔나"라고 비꼬았다. 앞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과거 군무이탈 의혹을 부인하며 "탈영했다면 제가 한기호 의원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천 원내대표는 이어 "한규백입니까"라고 덧붙여 반대 측의 환호를 받았다.
천 원내대표는 "객관적으로 들어봐도 왜 통폐합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통폐합 비용 2조3000억원을 합동성 훈련에 투자하면 우리 군대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권은 짧고 안보는 영원하다"며 "사관학교 세 개를, 말이 통합이지 사실상 폐교하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60~70년 쌓인 군 노하우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며 "이재명 대통령께서는 쿠데타를 통합 이유로 들었는데, 오늘은 한 줄도 안 나왔다. 연좌제라 뺀 것 아니냐"고도 했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도 국방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한 의원은 김홍철 정책실장을 향해 "우리 정책실장이 불쌍하다. 하고 싶어서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미래의 쿠데타를 할 세력이 이 자리에 와 앉아 있느냐. 쿠데타 할 수도 없지 않으냐"며 "논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의원의 발언 뒤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찬성 측은 합동성 강화와 미래전 대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학령인구 감소 대응 등을 통합 사관학교 창설의 이유로 들었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관학교 교육과정 만족도가 20~30% 수준밖에 안 된다"며 "민간대학과 비교하면 정말 비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반대 측은 군 정체성 약화와 공론화 부족, 정치적 목적의 통합 추진을 문제 삼았다. 김세진 미래생각 사무총장은 "사관생도들과 현역 장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강행하는 사관학교 통폐합은 개혁이 아니다"며 "명분 잃은 통폐합은 개혁이 아닌 파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천 원내대표와 한 의원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조회수가 수십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사관학교 통합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 중 하나다. 국방부는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4년제 국군사관학교를 대전 자운대에 창설해 합동성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방부는 이번 공청회 등을 거쳐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오는 10월 국군사관학교 세부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첫 공청회부터 욕설과 고성, 정치권의 작심 발언이 쏟아지면서 사관학교 통합 논의는 시작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힌 모습이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