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드래곤볼 팬덤

입력 2026-08-27 07:00
세계 2위 완구·게임 기업인 일본 반다이남코의 2024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실적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지식재산권(IP) 매출이다. 수년째 독주하던 간판 IP 건담을 누르고 드래곤볼이 1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드래곤볼 IP는 그해 1906억엔(약 1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역대 단일 IP 최고 실적을 갈아치웠다.

2024년 3월 드래곤볼 원작자 도리야마 아키라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세계 팬들이 만화책과 피규어, 관련 게임 등을 사재기한 결과다. 일본 대형 서점은 물론 아마존에서도 원작 단행본 42권 전권 세트가 며칠 만에 매진되는 등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정례 브리핑에서 도리야마 작가를 애도했을 정도다.

1984년 12월 연재를 시작한 드래곤볼은 누적 판매량 3억 부에 애니메이션·게임·영화로 IP를 확장하며 누적 매출 40조원을 넘긴 명작 만화다. 단순히 성공한 만화를 넘어 서브컬처 콘텐츠도 제조업을 뛰어넘는 수출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원조 글로벌 IP다.

국내 4050세대의 기억 속엔 1980년대 초교 앞 문방구에서 사서 보던 500원짜리 해적판 만화로 각인돼 있다. 드래곤볼은 1989년 국내에 공식 출판된 첫 일본 만화라는 상징성도 갖는다. 일본 대중문화가 전면 개방된 1998년 이전이지만, 영화·음반과 달리 인쇄 매체인 만화는 수입 금지 품목의 사각지대에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파리 인근 세르지퐁투아즈에 60억유로(약 9조7000억원)를 투입해 세 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중 한 곳은 드래곤볼을 테마로 지어질 것이란 보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모두 드래곤볼 팬인 것으로 알려졌다.

IP산업의 진정한 위력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서는 부가가치를 만드는 영속성과 확장성에 있다. 세계인의 가슴에 막 피어나기 시작한 K컬처의 팬덤을 떠올려본다. 한순간 열풍을 넘어 수십 년을 이어갈 ‘슈퍼IP’ 탄생을 기대해본다.

이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