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류 0g·단백질 45g"…'건강 숫자'에 빠진 식품업계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입력 2026-08-31 10:00
수정 2026-08-31 10:10


식품업계에 ‘숫자 경쟁’이 불붙고 있다. 한쪽에서는 당류를 0g까지 낮추고 다른 한쪽에서는 단백질을 한 병에 40~45g씩 넣는다. 음료뿐 아니라 아이스크림과 과자, 빵, 소스까지 ‘제로’가 붙고, 우유와 음료에서 시작한 단백질 경쟁은 바와 과자, 식사대용식으로 번지고 있다. 건강을 챙기려는 소비자가 늘자 식품업체들이 제품 전면에 ‘당류 0g’과 ‘단백질 24g’ 같은 숫자를 앞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20g에서 45g으로…단백질 ‘더하기 경쟁’
31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국내 RTD(즉석음용) 단백질 음료 시장 규모는 2020년 64억원에서 지난해 1245억원으로 약 19배 커졌다. 2020~2025년 연평균 성장률은 약 81%로 집계됐다. 지난해 글로벌 RTD 단백질 음료 시장이 전년 대비 10% 성장한 것과 비교해 한국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시장 규모 기준 한국의 세계 순위도 2020년 17위에서 지난해 5위로 뛰었다. 미국·일본·영국·독일에 이어 세계 5위다.

숫자 경쟁은 편의점 진열대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GS25에 따르면 판매 중인 단백질 음료는 2020년 3종에 불과했지만 2021년 9종, 2022년 21종, 2024년 38종, 지난해 43종을 거쳐 올해 50종까지 늘었다. 6년 만에 상품 수가 약 17배로 증가한 것이다. 고단백 경쟁은 음료 밖으로도 번지고 있다. GS25의 단백질 빵은 2024년 3종에서 지난해 10종, 올해 20종으로 2년 만에 6배 이상 늘었다.


시장 확대와 함께 ‘몇 g이 들었느냐’를 앞세운 함량 경쟁도 치열해졌다. 매일유업은 올해 단백질 45g을 넣은 ‘셀렉스 프로핏 스포츠’를 출시했고, 남양유업도 ‘테이크핏 몬스터’의 단백질 함량을 기존 43g에서 45g으로 높였다.

단백질 45g은 대략 닭가슴살 200g이나 달걀 7~8개, 두부 450~550g을 먹어야 섭취할 수 있는 양이다. 초창기 한 병에 10~20g 수준이던 단백질 음료가 최근에는 한 번에 40g대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제품으로까지 진화한 것이다.



‘2025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에서 19~29세 남성의 하루 단백질 권장섭취량은 65g, 여성은 55g이다. 단백질 45g짜리 음료 한 병이면 각각 하루 권장량의 약 69%, 82%에 해당한다.
제로 시장서는 '마이너스 전쟁'
제로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경쟁이 벌어진다. ‘얼마나 더 넣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빼느냐’가 제품 경쟁력이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4년 설탕 대체감미료를 사용하고 제품명에 ‘제로(Zero)’가 포함된 슈거제로 제품은 590개로 전년(261개)보다 126.1% 늘었다. 생산액도 4768억원에서 5726억원으로 20.1% 증가했다. 특히 음료를 제외한 빵·소스 등 제로슈거 제품 생산액은 282억원에서 592억원으로 109.7% 급증했다.

제로 열풍은 더 거세졌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저당·제로 탄산음료 시장은 2020년 8830만달러에서 지난해 6억7180만달러(약 9580억원)로 5년 새 7.6배 커졌다. 올해 전체 제로 음료 시장 규모는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GS25의 저당·제로슈거 상품은 2023년 113종에서 2024년 172종, 지난해 228종, 올해 305종으로 증가했다. 3년 만에 2.7배로 늘어났다. 초기에는 음료와 아이스크림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디저트와 소스, 빵을 넘어 간편식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올해 GS25 저당 상품 매출 상위 3개 제품도 ‘유어스 저당바닐라라떼’, ‘고단백저당베이글(체다치즈)’, ‘라라스윗 저당말차초코바’ 순으로 음료·빵·아이스크림이 고르게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삼각김밥에도 ‘저당’이 붙는다. GS25는 지난 4월 스테디셀러인 전주비빔 삼각김밥에 대체당을 사용한 ‘저당전주비빔 삼각김밥’을 출시했다. 고추장소스와 고추장불고기소스의 설탕 일부를 대체당으로 바꿔 당 함량을 낮춘 제품이다. 과거 ‘제로’와 ‘고단백’이 음료나 운동용 식품에 국한됐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먹는 빵과 아이스크림, 삼각김밥까지 ‘얼마나 빼고 얼마나 더 넣었는지’를 숫자로 보여주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편의점 GS25에서도 전체 탄산음료 매출 가운데 제로 제품 비중이 2022년 32.0%에서 2024년 52.2%, 지난해 54.5%까지 올라왔다. 이제 제로 제품이 일반 탄산음료보다 더 많이 팔리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과거처럼 단순히 ‘맛있는 제품’을 고르는 것을 넘어 당류와 단백질, 열량 등 영양성분을 직접 비교하기 시작한 결과로 보고 있다. 업체 입장에서도 ‘건강하다’는 추상적인 표현보다 ‘0g’이나 ‘45g’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제품의 차별성을 전달하기 쉽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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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