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동남아시아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에서 빠르게 세력을 키우고 있다. 바이트댄스·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와 중국에서 출발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로 잇달아 진출하면서다.
AI 확산으로 컴퓨팅 수요가 급증하자 전기차·배터리에 이어 AI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센터에서도 중국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5일 중국정보통신연구원에 따르면 동남아시아는 세계 데이터센터 건설 붐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정학적 안정성과 풍부한 토지·전력 공급, 빠르고 예측 가능한 프로젝트 건설 역량 덕분이다.
주요 동남아시아 시장의 컴퓨팅 인프라 용량은 지난해 4.4GW를 넘어섰다. 주요 컴퓨팅센터만 2000곳 이상이며 2030년에는 전체 용량이 10GW를 웃돌 전망이다.
국가별로는 싱가포르가 1.4GW 이상으로 가장 크고 말레이시아 1063MW, 인도네시아 900MW, 태국 620MW 순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AI가 2027년까지 동남아시아 6개국 국내총생산(GDP)에 약 1200억달러(약 166조원)를 추가할 것으로 관측됐다. 중국 기업들이 재빨리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중국 기업의 존재감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말레이시아 조호르다. 동남아시아 최대 컴퓨팅 허브 중 하나인 조호르에서는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텐센트가 현지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계약해 서버·전력 용량을 확보하고 있다. 올 2분기 조호르에서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 용량은 약 850MW에 달했다. 1.8GW가 건설 중이고 2.7GW가 개발 단계다.
태국에서도 중국 기업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현지에서 승인된 약 1.5GW 규모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가운데 중국계 투자와 연관돼 있거나 중국 기술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둔 사업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5월 태국 투자청은 바이트댄스 계열 틱톡시스템태국이 서버와 데이터 저장·처리 시설을 확대하기 위해 8423억바트(약 35조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다만 전력 부족과 규제 강화는 변수로 꼽힌다. 태국에서는 최소 10GW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전력 할당을 기다리고 있으며 승인에는 거의 2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도 전력과 용수 부담을 이유로 비AI 데이터센터 신규 승인을 제한하고 있다. 태국도 에너지·물 사용과 환경 영향을 사전에 심사하는 전담 조직을 꾸렸다.
이렇게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문턱이 높아지자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7월 바탐섬을 디지털경제와 데이터센터 우선개발지역으로 지정했다. 앞서 5월에는 바탐 자유무역지대 당국이 30㏊ 부지에 들어서는 50억달러 규모 고밀도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확정했다. 중국 허베이성에 본사를 둔 레인지테크놀로지가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에서 성장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공급망과 고객 기반을 넓히면서 AI 시대의 컴퓨팅 영토를 선점하는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해외 사업을 하는 한 중국 데이터센터 업체 임원은 차이신에 "고객을 다변화하고 국제 수요에 컴퓨팅 용량을 공급하는 글로벌 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