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정책·규제 영향을 크게 받는 시장이지만 결국 수요의 힘이 작동하기 마련입니다. 시장경제는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거래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 즉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질서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한경닷컴은 매주 수요일 '주간이집' 시리즈를 통해 아파트 종합 정보 플랫폼 호갱노노와 함께 수요자가 많이 찾는 아파트 단지의 동향을 포착해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경기도 부천 상동 일대에 8년 만에 새 아파트가 공급됐지만 1순위 청약에서 미달이 발생했습니다. '비규제' 매력과 이 일대 희소한 브랜드 신축 대단지라는 점이 실수요자의 이목을 끌었으나, 이른바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가 16억원을 넘는 높은 분양가에 청약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26일 아파트 종합정보 앱 호갱노노에 따르면 8월 셋째 주(17~23일) 방문자 수가 가장 많았던 단지는 '상동역 롯데캐슬 시그니처'(1859세대·2032년 3월 입주)였습니다. 한 주간 3만305명이 발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전날 진행된 1순위 청약에서 전용 84㎡를 초과하는 대형 평형은 1가구를 모집한 192㎡를 제외하곤 전부 미달했고, 전용 84㎡도 일부 미달했습니다.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타입은 84㎡E로 128가구 모집에 539명이 청약했습니다. 84㎡A는 174가구 모집에 382명이, 84㎡B는 59가구 모집에 143명이 지원했습니다. 84㎡D는 72가구 모집에 70명이 지원하는 데 그쳐 미달했습니다.
이 단지는 부천 내에서 상권과 학군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입지에 들어서는 신축이라는 강점이 있습니다. 상동역 롯데캐슬 시그니처는 옛 홈플러스 상동점 부지인 상동 540-1번지에 지하 8층~지상 49층, 7개 동, 1859가구 규모로 들어섭니다.
단지 바로 앞에 지하철 7호선 상동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7호선을 이용하면 환승 없이 서울 강남권 주요 업무지구(GBD)까지 곧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또 지하철 7호선 라인을 따라 지근거리에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뉴코아아울렛 등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고,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부천시청·상동 호수공원 등도 주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요자들은 높은 분양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전용면적별 분양가(최고가)는 84㎡A 16억3000만원, 84㎡C 15억9800만원, 84㎡D 15억9900만원입니다. 가장 비싼 84㎡E 고층은 16억3800만원에 달합니다. 최근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가 16억원을 돌파했는데, 경기도 부천시에 들어서는 새 단지의 분양가는 이보다 높아진 것입니다.
인근 단지와 가격을 비교하면 '상동역 롯데캐슬 시그니처' 분양가의 벽은 더욱 높습니다. 단지가 들어서는 상동역 인근 구축 단지들의 전용 84㎡ 매매가는 8~9억원대입니다. 바로 옆 단지인 '푸른창보밀레시티'(2002년 입주·330세대) 전용 84㎡는 지난달 8억940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부천시 중·상동 일대에서 가장 비싼 거래가를 기록한 단지와 비교해도 분양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2020년 입주한 '중동센트럴파크푸르지오'(999세대) 전용 84㎡가 2022년 4월 14억8000만원에 거래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13억9000만원에 거래돼, 아직 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비슷한 가격대에 거래되는 단지는 이 단지 바로 옆에 위치한 '힐스테이트중동'(2022년 입주·999세대)입니다. '힐스테이트중동' 전용 84㎡는 지난 7월 13억2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이후 이달에는 11억 후반~12억 후반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신축'이 귀한 부천 중·상동 일대에서 타 단지들에 비해 고액에 거래되는 단지들이지만, '상동역 롯데캐슬 시그니처' 분양가와는 여전히 2억원 이상의 격차가 있는 셈입니다.
시계를 되돌려 2년 전으로 돌아가면, 서울 한강 벨트 핵심지를 분양받을 수도 있었던 금액입니다. 예를 들어 2024년 7월에 분양해 내년 입주를 앞둔 마포구 공덕동에 '마포자이힐스테이트 라첼스'의 전용 84㎡ 분양가가 16억4000만~17억400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강북 대단지 아파트 최초로 3.3㎡당 분양가가 5000만원을 넘어 주목받았던 곳입니다. 서울 마포의 대장주 신축을 사던 돈으로 이제는 경기도 부천의 신축 분양권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된 셈입니다.
규제 문턱이 낮고, 추첨제가 물량이 많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비규제지역인 부천은 재당첨 제한이 없고, 거주 의무도 생기지 않습니다. 전매제한은 당첨자 발표일부터 1년입니다. 경쟁이 발생하면 부천 거주자가 우선이지만, 수도권 거주자도 청약할 수 있습니다. 전용 113㎡와 121㎡를 비롯해 153·187·192㎡ 펜트하우스는 100% 추첨제로 공급됩니다. 전용 84㎡ 역시 일반공급 물량의 60%가 추첨제로 배정됐습니다. 추첨제 물량 가운데 75%는 무주택세대 구성원에게 우선 공급하고, 이후 잔여 물량은 관련 기준에 따라 단계별 추첨이 진행됩니다. 부천 내에서 '신축 대형으로 갈아타기'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입지와 규모가 비슷할 때 연식 차이에 따른 가치를 '3년에 5%' 수준으로 산정하는 자체 분석 모델을 적용하면, 인근 준신축 시세 대비 이 단지의 적정 분양가는 14억원대 초반 수준"이라며 "현재 분양가는 적정선을 초과한 상태"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부천 지역 내에서 이 분양가를 받아줄 수 있는 자금력이나 시장 체력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며 "11억원대에 분양한 두산위브더제니스 부천도 미달을 기록한 만큼, 대형 평형의 경우 분양가 부담이 커 내년까지도 완판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