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홀린 이자람의 ‘눈, 눈, 눈’…LG아트센터 큰 무대 오른다

입력 2026-08-25 16:28


“작년 태어난 작품이 여러 관객을 만나고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까지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쌓인 경험이 무엇을 새롭게 펼쳐낼지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리꾼 이자람이 판소리 ‘눈, 눈, 눈’으로 다시 국내 관객을 만난다. 작년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이 작품은 올여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을 거쳐 오는 10월 1300석 규모 대극장인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로 무대를 옮긴다. 이자람은 25일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 무대에서 새 관객을 만났을 때 어떤 눈보라 장면을 그려낼 수 있을지 나 역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눈, 눈, 눈’은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주인과 일꾼>을 이자람이 판소리로 다시 쓴 작품이다. 여러 상점을 거느린 상인 바실리가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한겨울 숲을 사러 나섰다가 일꾼 니키타와 함께 눈보라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자람은 해설자와 바실리, 니키타는 물론 말과 개까지 10여 개의 역할을 홀로 소화한다. 무대에는 이자람과 고수 이준형 두 사람만 선다.

이자람은 지난 아비뇽 공연에서 판소리를 처음 접한 관객들과 호흡했던 경험을 인상 깊게 꼽았다. 공연 중 부채를 펼치면 객석에서 ‘쉬이’ 소리를 내 눈보라를 만드는 장면에서 현지 관객들은 1층에서 4층까지 일제히 소리를 보탰다. 이자람은 “추임새를 낯설어하던 관객들이 눈보라 소리를 부탁하자 기다렸다는 등 반응했다”며 “프랑스에서 눈보라가 더 잘 휘몰아친 것 같다”며 웃었다.

올 10월 대극장에서 공연을 펼치게 되면서 이자람이 처음 구상했던 이미지에도 한층 가까워진다는 설명. 이자람은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부터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무대에 눈보라 속에서 조그맣게 서 있는 그림을 떠올렸다”며 “이번에는 처음 상상했던 그림에 가까운 무대를 관객과 함께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 초연에서 선보인 ‘빈 부대’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높고 길어진 무대에선 조명과 안개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연출을 구현할 예정이다.



이자람은 20년 가까이 해외 고전문학을 판소리로 재창작해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을 토대로 한 ‘사천가’와 ‘억척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재창작한 ‘이방인의 노래’ 등이 대표적이다. 이자람은 해외 고전을 거듭 판소리로 옮기는 이유에 관해 “판소리는 아주 먼 이야기를 가까이 당기는 힘을 갖고 있다”며 “감정 과잉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현대나 근대의 일보단 고전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자람의 ‘눈, 눈, 눈’ 창작은 한 사람과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그가 ‘프랑스 아빠’라고 부르는 데니스가 새로운 이야기를 찾던 이자람에게 톨스토이의 단편을 권했다. 2년 뒤 아비뇽에서 완성된 작품을 본 그는 눈물을 머금고 이자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이자람은 “흑백화되는 시간 속에서 잠시라도 삶을 컬러로 만드는 것이 무대예술이 하는 일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공연은 10월 23~24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에서 열린다. 서울 공연은 당초 객석을 2층까지 열 예정이었지만, 모두 매진되면서 이날 3층까지 열었다는 설명. 서울 공연에 앞서 다음달 18~19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0월 8~9일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도 관객을 만난다. 서울 공연 이후에는 12월 4~5일 제주아트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