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에 웨스팅하우스(WEC) 지분 인수를 제안한 이면에는 글로벌 원전 공급망을 쥐려는 지정학적 포석이 깔려 있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와 일본 도시바의 제작 역량을 결합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려 한 2006년의 시도와 비슷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원전 분야에서 ‘팀 코러스(Korea+US)’가 짜인다면 중국과 러시아산 원전을 기피하는 제3국 원전 시장에 확실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업계에선 한·미 간 ‘원전 지분 동맹’이 이뤄지면 한국 원전산업이 유럽 등 선진 시장에 진입하는 우회로가 생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초 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기술 라이선스 합의를 두고 일각에선 양측이 진출할 시장을 유럽(미국)과 비유럽(한국), 선진 시장(미국)과 중진·개발도상국 시장(한국)으로 쪼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이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인수하면 판도가 달라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국 기업의 합작 형태(JV) 공동 진출이 되기 때문에 유럽연합(EU)의 담합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유럽 원전 시장의 빗장이 다시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럽에선 영국 윌파(최대 4기), 네덜란드 보르셀레(2기), 폴란드 퐁트누프 2단계, 스웨덴 신규 원전 등 굵직한 원전 프로젝트가 대기 중이다.
최근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자력 협정을 타결하며 중동 원전 시장의 주도권을 쥔 국면도 이번 제안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사우디 수주전에 공을 들여온 한국이 미국의 원천 기술 통제권을 인정하며 협력 구도를 형성한 만큼 미국도 반대급부로 한국에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를 제안해 ‘글로벌 공동 전선’을 완성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분 인수는) 양국이 소모적인 로열티 분쟁을 끝내고 글로벌 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