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전월세 모두 뛴 서울…원인은 유동성 급증

입력 2026-08-24 19:01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전월 대비로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4개월 연속 1% 이상 올랐다. 월세 평균은 150만원을 넘겼다. 주택 매매 가격과 전세, 월세가 모두 상승한 ‘트리플 강세’다. 누구는 투기 세력을 탓하고, 누구는 공급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경제학의 기본 원리 중 통화량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이 있다. 이 원리를 대한민국 집값에 적용해 ‘진짜 이유’를 찾아보자.◇돈이 풀리면 물가는 오른다
현대인은 인플레이션을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똑같은 상품의 가격이 수요가 특별히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르는 것일까. 살인적인 물가 상승에 시달리던 16세기 스페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일군의 경제학자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신대륙에서 금과 은이 대량 유입되면서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상승했다.’

18세기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흄은 경제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흄은 화폐의 양이 늘어나면 단기적으로 경기가 활기를 띨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가 오른다고 분석했다.

20세기 초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통화량과 물가에 관한 이론을 종합해 M×V=P×Y라는 화폐수량방정식(교환방정식)을 제시했다. 여기서 M은 통화량, V는 화폐 유통 속도, P는 가격, Y는 생산량이다. 한 나라 경제의 생산 능력(Y)과 화폐 유통 속도(V)가 단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보면 통화량(M)과 물가(P) 사이에 정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이렇게 화폐의 양이 물가 수준을 결정한다는 이론을 화폐수량설이라고 한다. 물가가 올랐다기보다는 돈이 풀려 화폐 가치가 내렸다는 것이 인플레이션에 관한 정확한 설명이다.◇집값과 통화량의 놀라운 관계실제 통화량과 집값의 관계를 살펴보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2006년 7~9월 서울 압구정현대아파트 전용면적 85㎡는 11억8000만~13억원에 거래됐다. 전용 109㎡ 매매 가격은 12억~12억3000만원이었다. 올해 2분기 이후 실거래가는 85㎡가 54억~66억원, 109㎡는 58억5000만~66억5000만원이다. 20년 만에 4.6~5.4배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통화량 지표인 광의통화(M2)는 4.2배가 됐다. 압구정현대의 가격 상승 폭이 더 크지만, 대략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개별 아파트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KB 부동산데이터허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08년 자료다. 2008년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03.8% 올랐고, 같은 기간 M2는 231.0% 증가했다. 통화량 증가율과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비슷하다.

통화량 증가가 집값을 올리는 원리는 간단하다. 매매 가능한 아파트가 한 채뿐인데 수요자 10명에게 1억원씩 주고 경매를 한다고 해 보자. 호가가 1000만원, 2000만원으로 오르다가 1억원에 낙찰될 것이다. 이들에게 1억원씩 더 주고 한 번 더 경매에 부치면 낙찰가는 2억원이 될 것이다. 달라진 건 통화량뿐인데 똑같은 아파트의 가격이 두 배가 됐다.◇집값은 정부가 올린다화폐수량설에는 한계도 있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돈을 빨리 써 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화폐 유통 속도가 고정돼 있다는 화폐수량방정식의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경기 침체 상황에선 통화량 증가가 생산을 자극할 수 있어 산출량 불변이라는 가정 또한 맞지 않는다.

물가와 집값엔 통화량 외에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집값은 입지에 따라 격차가 크다. 그러나 통화량이 증가하면 장기적으로 물가가 오른다는 점에는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한다.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부터 1920년대 독일과 최근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반복해서 확인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결국 유동성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화폐수량설의 통찰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도 800조원 이상의 ‘슈퍼예산’을 공언한 정부가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얘기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