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대신 빌라 사도 될까요?"…무주택자 '한숨' [시장톡]

입력 2026-08-25 13:24
수정 2026-08-25 13:30
"전세 사기를 한 번 당하고 나서는 '내 집'이 더욱 간절해졌어요. 그런데 아파트 가격은 너무 비싸서,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부에서 빌라를 매수하면 대출을 풀어준다고 하는데, 주변에서는 '인생 꼬이기 싫으면 무조건 아파트'라고 하네요. 전세로 계속 살아야 할지, 빌라라도 매매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아요." (20대 직장인 A씨)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전세·월세 가격이 동시에 치솟으면서 무주택 청년층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내 집 마련 수요자 사이에서 '눈높이를 낮춰 빌라나 오피스텔이라도 사야 하나'라는 고민이 커지는 모양새다. 정부는 비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며 수요 유입을 도모하고 있지만, 현실적 제약 탓에 무주택자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부동산 금융종합대책을 통해 만 39세 이하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가 4억원 이하 비아파트를 살 경우 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80%까지 적용해 주는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내년 1월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청년층의 실질적인 주거 안정을 돕고 자가 마련의 사다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책을 접한 무주택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대다수 청년층에 부동산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자산 형성의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난 부동산 상승장을 지켜보며 '아파트 쏠림'을 학습한 이들에게 빌라는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기 까다로운 상품이다. 대부분의 무주택자는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데다,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권리관계가 복잡하고 가격 산정 기준이 모호하다. 무엇보다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4억원 이하'라는 지원 기준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7월 거래된 서울 다세대·연립주택(2만2660건)의 평균 매매 가격은 이미 4억2852만원을 기록했다. 정부 지원 대상에 들어가는 4억원 이하 오피스텔(5541건)의 경우 평균 전용면적이 28.30㎡(약 8.5평)에 불과해, 장기적으로 정주할 수 있는 '내 집'으로서의 안정감을 제공하기엔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입지의 빌라는 이미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은 실정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 연립·다세대 매매량은 9276건, 거래금액은 3조76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4.4%, 31.1% 증가했다. 정책 완화 신호와 함께 민첩한 투자 수요가 먼저 쏠리면서 소액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알짜 매물은 진작 소진된 셈이다.

서울 은평구의 B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거래가 활발히 이어졌고 최근에는 손님이 오히려 뜸한 편"이라며 "상대적으로 소액 진입이 가능하던 저렴한 매물은 이미 다 팔려나갔고, 현재는 몸집이 크고 매매가가 높은 주택 위주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비아파트 매수가 무주택자에게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정비사업의 실체를 철저히 따져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 연구원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고민하는 무주택자면서 '인서울' 입지가 중요한 기준이라면, 개발 가능성이 있는 비아파트 매수를 고민해볼 수 있다"며 "정부의 대출 지원책이 나온 만큼, 자산 증식의 기회를 놓칠까 불안한 사람들은 '상품'을 낮춰 비아파트를 매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비아파트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면 아파트 전세를 택하되 먼 곳에서 출퇴근하는 등 생활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므로 결국 선택의 문제"라면서도 "향후 시장에서는 자산 사다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비아파트 매수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빌라를 매수한다면 개발 가능성이 높고 재개발 사업의 윤곽이 드러난 지역으로 한정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서울 내 신축 공급 부족이 심해지고 희소성이 높아지는 만큼, 관심 있게 찾아보면 여전히 비교적 소액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개발 가능성이 큰 비아파트가 존재한다"며 "정부의 정책 완화 기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단순히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매수하기보다는 정비구역 지정이나 동의서 확보 등 사업 실체가 명확히 확인된 곳을 선별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