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기업들이 올들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파산과 기업 회생절차가 이어지는가 하면,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충전기가 무더기로 단전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치솟는 원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사실상의 ‘가격상한제’에 묶여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가 한계에 달했다는 게 업계의 토로다.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인 충전 인프라 생태계가 무너지면, ‘전동화를 통한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발목잡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기요금도 못 낼 판”
24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 전문기업 차지인은 불어나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이달 최종 파산했다.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 규제샌드박스 1호 기업으로 선정되며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기업이다. 한때 코스닥 상장까지 추진했었다. 주요 충전기업인 클린일렉스와 이카플러그 역시 누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 4월과 5월 잇따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환경부 브랜드 사업 등을 대거 수주하며 전국에 3만 대 이상의 충전기를 보급·운영하던 이지차저는 한전 전기요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해 전국 아파트와 공공 거점에 설치된 충전기가 무더기로 단전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더 큰 기업들의 상황도 어렵다. 국내 전기차 충전 기업중 1호로 상장한 채비는 매년 수백억 원대의 영업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년 전 상장 주관사 선정 당시 최대 2조 원으로 거론되던 기업가치는 현재 시가총액 2000억 원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호 상장 후보로 꼽히던 GS에너지 자회사 GS차지비는 업황 악화에 상장 추진을 사실상 잠정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한화그룹 계열사 한화모티브가 충전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한 충전업체 대표는 “투자금 회수 기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대기업들조차 사업 철수를 검토하는 처지”라고 털어놨다.
○사실상의 정부 가격상한제
업계는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치솟은 전력 원가와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부의 가격 통제 시스템을 꼽는다. 현재 국내 전기차 충전 결제의 99% 이상은 정부가 관리하는 EV이음 카드로 이뤄진다. 앞서 환경부는 충전 사업자마다 회원 카드가 달라 소비자가 여러 장의 카드를 소지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고, 제각각인 요금을 일원화하기 위해 2023년 이음 카드를 도입했다.
하지만 소비자 편의를 위해 출발한 통합 시스템이 시간이 흐르며 ‘가격상한제’로 자리잡았다는 지적이다. 충전 사업자가 원가 인상분을 감안해 자체 요금을 책정하더라도, 절대다수 소비자가 이음 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정부가 정한 요금이 곧 전국적인 전기차 충전요금이 되는 구조다. 현재 정부 고시 가격은 민간 업체들이 발행한 회원카드로 결제할때보다 kWh(킬로와트시)당 100원 이상 저렴하다.
이음 카드 요금은 2020년 평균 kWh당 173.8원에서 2025년 324.4원으로 올랐다. 이어 정부는 지난달 요금 개편을 통해 200kW 이상 초급속 충전요금 등 일부 요금을 인상했을 뿐, 전체 충전기의 90%에 달하는 30kW 미만 완속 충전요금은 기존 324.4원에서 294.3원으로 오히려 인하했다. 전기차 충전업체들은 한전 전기세 도매가는 물론 부지 임대료, 통신비, 유지보수비 등 인프라 투자·운영 비용이 크게 뛰었음에도 원가 상승분이 충전요금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같은 기간(2020~2026년) 전력 도매가와 한전 기본료 등 충전 원가 부담이 3배 이상 늘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전기차 인프라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신규 충전기 설치를 중단하고, 고장 난 충전기를 그대로 방치하는 실정이다. 국가적 전기차 보급 목표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충전요금이 높다는 입장인 만큼 무작정 가격을 올릴 수는 없다”며 “종합적인 관점으로 정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