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을 용기 잃었다"…지방행에 금감원·예보 노조 반발

입력 2026-08-24 15:11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에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금융회사 본점과 금융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두 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면 금융안정과 소비자 보호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보와 금감원 노조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예보와 금감원은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예보의 보호 대상과 금감원의 검사 대상인 금융회사 본점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며 “금융회사와 금융당국, 법무·회계법인, 정보기술 전문기관 등 금융 인프라도 수도권에 모여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금융위기 대응의 핵심은 속도라고 강조했다. 금융시스템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금융 현장에서 멀어질 경우 기관 간 물리적 거리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 금융 선진국의 금융안정·감독 기구가 수도에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전문인력 이탈 우려도 제기됐다. 금감원 노조가 조합원 15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만 40세 미만 직원 중 지방이전 시 이직을 적극 고려하겠다는 응답은 82.5%에 달했다. 전체 연령대 응답률인 69.7%보다 높다.

예보 노조 내부 설문에서도 지방이전 시 계속 근무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근속 5년 미만 저연차 직원 12%, 5급 실무직 9.5%에 그쳤다.

노조는 “실무진 다수는 회계사, 변호사, 계리사 등 금융·법률 전문성이 검증된 인력”이라며 “저축은행 사태 등 금융위기를 직접 겪으며 축적한 경험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전문성 이탈은 곧 소비자 보호 기능의 소실”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세대에게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상황에서 근무지 이전은 결혼, 출산, 육아, 경력 유지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예보가 이날 소개한 한 실무직원의 사연에는 “지방이전으로 아이 낳을 용기를 잃었다”는 호소가 담겼다. 이 직원은 “서울에 직장이 있는 남편은 지방으로 내려갈 수 없고, 이전이 현실화하면 연고 없는 타지에서 홀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방이전은 직장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가족을 해체하거나 경력 단절 위험으로 내몰아 아이 낳기를 포기하게 만든다”며 “시대착오적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헌 예보 노조위원장은 “예보가 보호하는 은행예금 중 70%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며 “금융안정의 심장인 예보 이전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했다.

김상우 금감원 노조위원장도 “금감원의 지방이전으로 금융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놓치게 될까 걱정스럽다”며 “국가 핵심 인프라는 기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부 인원만 이전하는 절충안에 대해서도 “수용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기자회견 이후 청와대 국민경청 비서관실 관계자에게 관련 의견서를 전달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노조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방이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 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본원 대강당에서 지방이전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도 열었다. 노조 추산 약 400명의 조합원이 검은색 웃옷을 입고 참석해 ‘현장 떠난 금융감독 구멍 뚫린 금융안전’, ‘출장비용 이전비용 소비자는 금리폭탄’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참석자들은 “감독 공백 유발하는 이전 논의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중앙행정기관 2차 지방이전 방안은 이르면 25일 국무회의에서 심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과 예보 노조는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추가 연대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