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믿고 먹는 과일 장인 족보', '네임드 농부 리스트'라는 게시물이 공유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름 석 자만 보고 사면 실패 없다"는 소문이 돌면서 과일을 구매할 때 재배자의 이름을 먼저 확인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다. 멜론의 이원재 농부, 복숭아의 정익훈·김동철 농부, 거봉의 이재석 농부 등이 대표적인 '아묻따(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고) 구매' 상위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자두, 복숭아, 포도, 멜론 등 제철 과일을 식감과 당도, 산미, 출하 시기별로 세밀하게 나눈 '과일 지도' 이미지도 활발히 유통되고 있다. 와인이나 스페셜티 커피를 고를 때 생산자나 품종, 테루아를 꼼꼼히 따지던 미식 소비 패턴이 일상적인 과일 쇼핑 영역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이처럼 단순히 달고 크기가 큰 과일을 찾는 단계에서 벗어나, 과일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기준은 기하급수적으로 세밀해지는 추세다.당도뿐만 아니라 식감부터 산지별 아로마까지 기준 세분화이러한 변화는 과일의 선택 기준이 '당도(Brix)' 수치 하나에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완전히 다변화됐음을 보여준다. 컬리가 운영하는 미식 콘텐츠 기획전 '에피큐어' 등 유통가 플랫폼에서도 과일을 고르는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출하 시기는 주차별로 세분화됐다. 초여름을 알리는 신비 복숭아부터 시작해 8월 말 단맛이 농축돼 절정을 맞이하는 만생종 황도까지, 계절 흐름에 따른 품종 변화를 확인하며 구매하는 식이다. 식감 역시 '물복(물렁한 복숭아)'과 '딱복(딱딱한 복숭아)'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섰다. 대표적 딱딱이 품종인 '오도로끼(경봉)' 특유의 씹히는 맛부터 과육의 조밀함이 만든 쫀득함, 말캉함, 아삭함까지 식감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 소비하는 문화가 정착했다.
맛과 풍미를 바라보는 시각도 한층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단맛 일색의 과일보다는 기분 좋은 새콤함(산미)과 단맛의 밸런스를 따지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달다'는 표현을 넘어 솜사탕이나 망고 향, 화이트 플라워(꽃향) 같은 고유의 아로마 특성을 확인해 구매하는 소비자도 늘었다.
산지 정보도 더욱 세밀해졌다. 영동·상주·김천·영천 등 전통 명산지별 기후와 토양 특성에 따른 풍미 차이를 비교하며 선호 지역을 지정하는 식이다. 이와 함께 '16brix 이상'처럼 선호하는 스펙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거나, 샤인머스캣을 넘어 국내 생산량이 극소수에 불과한 프리미엄 품종 '로얄바인', 특정 재배 클럽의 회원제 상품 등 희소 품종을 발굴해 즐기는 취향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이 같은 세분화된 수요는 실제 판매에도 반영되고 있다. 컬리의 경우 단순 포도 카테고리 내에서도 '유명산지 샤인머스캣'부터 전통적인 산미와 풍미의 '캠벨포도', 탱글한 식감의 '거봉', 특정 당도 기준을 내세운 '16brix 이상 고당도 상주 샤인머스캣' 등 당도·산지·품종·식감별로 세분화한 상품을 선보이며 소비자 선택권을 넓혔다.다양한 페어링까지
과일을 소비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단일 생과 형태로 깎아 먹는 단조로운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식재료와의 조합을 즐기는 페어링 문화가 정착하고 있다.
전문 파티시에나 소믈리에, 치즈 아티장 등의 팁을 참고해 포도에 특정 치즈를 곁들이거나, 복숭아를 하몽·제육 등 샤퀴테리나 올리브오일과 조합해 요리 형태로 즐기는 식이다. 한 쟁반 위에 여러 품종의 포도나 복숭아를 올려두고 식감과 풍미를 비교하며 먹는 비교 시식 문화도 확산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수치화된 당도나 산지 위주로 과일을 선택했다면, 최근 소비자는 식감의 세분화, 아로마, 제철 출하 타이밍, 생산자 브랜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며 "소비자의 눈높이가 올라감에 따라 과일을 한층 입체적인 미식 요소로 즐길 수 있도록 세밀한 큐레이션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