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단백질 설계 1300개…AI 스스로 신약 물질 만들었다

입력 2026-08-24 16:11

지금까지 신약 후보 발굴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 가운데 후보를 골라내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인공지능(AI)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세상에 없던 단백질을 처음부터 설계해 신약 후보로 만들어내는 길을 열고 있다. 앤트로픽은 최근 AI 모델 클로드가 여러 단백질 설계용 AI를 이용해 특정 표적에 달라붙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약물 설계하는 AI로 적중률 26.8% 연구진은 클로드에 질병 표적과 단백질 설계 방법을 담은 연구 프로토콜을 제공한 뒤 실제 연구 과정을 맡겼다. 클로드는 표적 단백질의 어느 부위에 결합할지 정하고 적합한 전문 AI를 골랐다. 이어 단백질 구조와 아미노산 서열을 생성하고 후보별 결합 가능성을 평가해 유망한 물질을 추렸다. 이 과정은 24~48시간 동안 진행됐다.

기존에는 계산생물학자가 여러 단백질 전문 AI를 직접 실행한 뒤 결과를 비교하고 다시 설계 조건을 바꿔 후보를 좁혀야 했다. 전문 AI가 발전했어도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연구자의 개입이 필수적이었다. 이번에는 범용 AI인 클로드가 여러 전문 AI를 도구처럼 골라 쓰며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을 대신했다.

적중률도 높았다. 실제 합성·분석할 수 있었던 단백질 후보 1320개 가운데 354개가 표적에 결합해 전체 적중률 26.8%를 기록했다. 측정 가능한 15개 표적 가운데 14개에서는 최소 한 개 이상의 결합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클로드가 각 실험에서 가장 유망하다고 1순위로 추천한 후보만 놓고 보면 49%가 실제 표적에 달라붙었다. 전통적인 저분자 신약 후보 발굴에서 수십만~수백만 개 화합물을 시험하는 고속대량스크리닝(HTS)의 적중률은 통상 1%를 밑돈다.

일부 표적에선 기존 인간 연구진의 성과를 웃도는 결과도 나왔다. 단백질 분해 과정에 관여하는 ‘RBX1’을 표적으로 한 실험에서 클로드 계열 모델은 40%의 적중률을 보였다. 앞서 진행된 단백질 설계 경진대회 참가자들의 적중률은 3.7%였다.

AI 단백질 연구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2020년 등장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가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며 AI 단백질 연구의 지평을 열었다. 이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프로테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개발한 ‘프로틴MPNN’과 ‘RF디퓨전’ 같은 AI 도구가 등장하면서 연구는 이미 존재하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원하는 기능을 갖춘 새 단백질을 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번 연구는 여기서 다시 한발 더 나아갔다. 클로드는 RF디퓨전과 프로틴MPNN을 비롯해 ESM폴드2, 프로테닉스 등 설계·구조 예측용 AI를 작업에 맞게 조합했다. 새로운 단백질 설계 AI 하나가 더 등장한 것이 아니라 여러 전문 AI를 지휘해 연구 목표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신약개발 기간·비용 절반 줄인다AI는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에 신약 후보물질을 찾으려면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 가운데 질병 표적에 맞는 것을 찾아내야 했다. AI 단백질 설계는 반대로 표적을 먼저 정한 뒤 여기에 맞는 분자를 만들어낸다.

제약업계에서는 통상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 약 3조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본다. AI를 활용하면 후보물질 발굴과 초기 개발에 걸리는 시간 및 비용을 기존의 절반 수준 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특히 수많은 후보를 실험실에서 일일이 검증하기 전에 AI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물질을 추려낼 경우 초기 연구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