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재 연봉이요?시가(時價)죠."
일본 대기업들이 인공지능(AI)과 사이버보안 등 고급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손보고 있다. 일반 직원과 별도로 시장가치에 맞는 고액 연봉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잡형 고용과 별도 급여제도를 도입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SOMPO홀딩스는 지난 6월 ‘SOMPO 프로페셔널 풀’이라는 새로운 채용 방식을 도입했다. AI와 사이버보안, 법무, 컴플라이언스 등 그룹 각사에서 필요한 전문인력을 정규직으로 일괄 채용한 뒤 계열사에 파견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30대 초반이라도 연봉 1000만엔대 중반 이상을 받을 수 있다. SOMPO는 2020년 취업규칙을 잡형으로 개정했지만 그룹 내에는 여전히 잡형과 연공형 기업이 혼재해 있어, 개별 계열사가 고액 연봉을 제시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괄 채용 방식으로 해결했다.
고급 전문인력의 몸값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특히 AI와 사이버보안, 금융 분야에서는 외국계 기업까지 가세해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봉 수준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전문인재를 이직 에이전트를 통해 채용할 경우 기업이 지급하는 소개 수수료도 평균적으로 해당 인재 연봉의 35%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유지하는 기업이 기존 취업규칙만으로는 특정 인재에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본급에 별도 수당을 얹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장기간 지급할 경우 법적으로 기본급과 동일하게 취급돼 시간외수당과 상여금, 퇴직금까지 함께 늘어날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전문인력에 대해 별도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다만 게이단렌 조사에 따르면 잡형 고용을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예정·검토 중인 기업은 응답 기업 337곳 가운데 26%에 그쳤다.
미쓰비시UFJ은행은 2024년 도입한 ‘Ex(엑스퍼트) 제도’를 전문인력 확보에 활용하고 있다. 기존 멤버십형 취업규칙은 유지하면서도 별도 급여규정을 추가해 30대 중반이라도 지점장이나 부장급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시스템 개발과 금융시장, 사이버보안 인력이 주요 대상이다.
현재 이 제도를 통해 경력 채용된 인원은 40여명이다. 내부 직원 가운데 전문성이 높은 인력에도 적용해 전체 국내 직원 2만2000명 중 800여명이 대상에 포함돼 있다.
후지쓰도 전문인력을 위한 별도 처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AI와 데이터사이언스, 사이버보안, 사내 변호사 등을 대상으로 희소성과 기여도에 따라 S·A·B·C 4단계로 분류해 추가 보상을 지급한다.
최고 등급인 S급은 연봉을 개별적으로 설정해 2500만~3500만엔까지 지급할 수 있다. A급은 월 30만엔, B급은 15만엔, C급은 5만엔을 기본 급여에 추가한다.
후지쓰는 2020년 취업규칙을 잡형으로 전환한 데 이어 2025년부터는 신입 일괄채용도 폐지하고 경력직과 구분하지 않는 연중채용으로 전환했다.
닛케이는 AI를 비롯한 고급 전문인력의 시장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 기업의 전통적인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직무와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과 급여제도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