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 들고 100년 골목으로…하이커우 옛 거리의 '소비 실험' [차이나 워치]

입력 2026-08-25 13:51
수정 2026-08-25 13:54


23일(현지시간)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의 중심부에 들어서자 고층 빌딩 대신 2~4층 높이의 흰색 건물이 길게 이어졌다.

1층에는 가게가 들어서고 2층은 주거공간으로 쓰는 샤뎬상자이(아래층 상점, 위층 주택) 구조다. 건물 앞쪽의 아케이드는 강한 햇볕과 갑작스러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이어져 있다. 100년 넘게 하이커우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해온 치러우라오제다.



거리 곳곳을 누비며 사진 찍기에 바쁜 관광객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코코넛 음료가 들려 있다. 이른바 '인생 샷'이라고 불리는 자리에선 왕홍(중국 인플루언서)들이 촬영에 분주했다.

저녁이 되면 건물 외벽에 조명이 켜지고 낮의 건축 관광은 야간 소비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이 거리는 하이난의 대표적인 몰입형 소비 공간으로 불린다.

숫자로도 드러난다. 하이커우시에 올 1~5월 치러우라오제 방문객은 1009만18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41.11% 증가했다. 신화통신은 2023년 200만명대던 방문객이 2025년 1500만명 이상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2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100년 된 상업 거리가 하이난의 새로운 대형 관광 소비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는 셈이다.



경쟁력의 출발점은 건축 자체다. 이 일대에는 치러우 건축물 약 596동이 남아 있다. 이 중 349동은 보호 역사건축물로 지정돼 있다. 19세기 말부터 동남아시아로 건너갔던 하이난 화교들이 귀향하면서 서양식 아치와 기둥, 중국 남방 건축 양식을 결합해 지은 건물들이 거리의 골격을 만들었다.

점포 뒤쪽에 작업장을 두는 첸뎬허우창(앞쪽 상점, 뒤쪽 공방) 구조도 많다. 애초부터 보는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용 건축으로 설계됐다는 의미다. 이런 건축물의 특성이 관광 소비 공간으로 재생하기 유리한 조건이 됐다.



하이커우시는 이 역사성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 콘텐츠를 집어넣고 있다. 올 들어서만 취안쥐더, 구웨룽산, 둥어아자오 등 80개가 넘는 중국의 라오쯔하오(전통 브랜드)를 유치해 전통 브랜드 집적지를 조성했다.

관광객에게는 소비할 이유도 계속 늘리고 있다. 라오바차(하이난에서 자생한 차 문화)와 하이난 전통극 공연을 결합하고, 전통 무형문화유산에는 패션과 체험 프로그램을 붙였다. 야간에는 건축물 조명과 야간 공연을 연결했다. 오래된 건축을 배경으로 먹거리와 사진 촬영, 공연과 쇼핑, 야간 관광이 한 공간에서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정부 투자도 뒤따르고 있다. 하이커우시는 치러우라오제 관광지의 기반시설 개선에 약 3억위안(약 620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관광센터를 확장하고 공공건물을 관광·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며 주차장과 안내 체계, 화장실 등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올 들어선 역사문화거리의 건축·경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설계지침도 마련했다.

이런 노력은 면세점에 집중됐던 하이난 관광 소비의 외연을 넓히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하이난성은 관광·문화·상업·전시를 연계하고 야간 소비 지역의 교통과 다국어 서비스를 확충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이난 자유무역항을 찾은 관광객이 면세점에서 고가 상품만 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 거리에서 음식과 공연, 문화상품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이커우시 한 관계자는 "새 건물을 세워 관광지를 만드는 대신 100년 된 도시의 기억을 소비 자산으로 바꿨다"며 "오래된 약방과 찻집, 주민들의 생활공간은 그대로 두면서도 새로운 브랜드와 야간 콘텐츠를 섞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커우=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