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과 경상수지 전망을 각각 3.2%, 3600억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가 주도하는 수출 호조가 배경이다. 우리 경제가 최대 수혜자로 부상한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결국 인공지능(AI) 기술 혁명에서 파생한 수요라는 점에서 우리는 일종의 AI 낙수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높은 반도체 의존도를 감안하면 수년간 우리 경제 성장과 거시금융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AI 경제의 향방이다. 국제금융시장은 AI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 일각에서는 AI 기업이 발표한 투자 규모의 적정성과 자금 조달 계획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AI 경제와 관련해 최근 두 가지 연구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첫 번째는 미국 경제에서 AI 기술 혁명이 창출한 부가가치, 즉 AI 국내총생산(AI GDP)을 추정한 유럽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보고서다. 추정 결과는 충격적이다. 명목 AI GDP는 2023년 420억달러에서 2025년 2500억달러로 여섯 배로 늘었다. 반면 질적 변화를 반영한 실질 AI GDP는 2023년 420억달러에서 2025년 31조2000억달러로 무려 744배 증가했다. AI 서비스 단위당 달러 가격은 큰 변화가 없지만 서비스 질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 결과다. 바꿔 말하면 AI 서비스 실질 가격이 매년 94% 이상 급락해 실질 AI GDP 증가율을 밀어 올린 것이다. AI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추정 결과다.
두 번째는 미국의 AI 투자 규모와 자금 조달 계획의 지속 가능성을 역사적 사례와 비교 분석한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다. 1830년대 미국 운하 건설 붐, 1840년대 영국 철도 건설 붐, 1920년대 자동차·영화·항공·방송 산업 전반에 걸친 투자 호황, 2000년대 닷컴버블 등은 모두 기술 혁신이 선도한 투자 호황 혹은 버블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사례는 투자 호황이 시작된 지 4~5년쯤 지나 정점을 찍은 뒤 빠르게 수축하면서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패턴을 보였다.
2023년 시작된 AI 투자 호황은 규모와 속도 면에서 역사적 선례를 압도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오라클 등 미국의 주력 AI 인프라 기업(하이퍼스케일러)들이 발표한 2026년 자본지출 규모는 700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2003년 저점 대비 4.5배 수준으로 과거 투자 버블 사례에 비해서도 속도가 훨씬 빠르다. 2~3년 내 투자 규모가 수조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시장의 공격적인 예상이 맞다면 투자 호황의 정점은 아직 멀었다.
보고서는 AI 투자 규모가 적정 수준보다 50% 이상 과다한 것으로 추정하고 그 원인을 시장 선점을 위한 AI 인프라 기업의 경쟁적인 과잉 투자에서 찾고 있다. 적정 수준을 넘는 대규모 투자는 실패 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리스크 요인이다. 투자 자금 조달이 보유 현금 위주에서 외부 차입으로 바뀌고, 이에 더해 AI 인프라 기업, 반도체 기업, AI 서비스 기업 사이에 제품·서비스 구매 약속을 담보로 지분 투자와 대출이 이뤄지는 순환금융(circular financing)이 늘어난다는 점도 심각한 잠재 리스크 요인이다.
순환금융으로 관련 기업 간 연결성이 높아지면 작은 실물경제·금융시장 충격에도 금융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AI 신중론의 배경이다. AI 긍정론은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꽃피우고 있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 ‘대체 불가 한국’을 외치며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논리가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금융당국만큼은 AI 신중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질 가격 급락이 밀어 올린 AI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분명 소비자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AI 기업의 재무적 성과와 금융 리스크는 (투자 대비) 명목 AI GDP 수준이 좌우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막지 못해 신뢰에 금이 간 금융당국에 더 이상 실수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