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향을 지키는 게 행복하려면

입력 2026-08-23 17:21
수정 2026-08-24 00:57
다음 주말 내 고향 영주에서 여고 동창회가 열린다. 경북 영주에서 초중고를 다닌 나는 재작년부터 부쩍 고등학교 동창회에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끝 세대인 우리는 당시 한 학년 인원만 480여 명이었다. 그중 고향을 지키고 사는 친구는 4분의 1 정도 되는 듯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일찍 결혼하고 출산도 빨리 해 벌써 며느리, 사위를 보고 손주까지 봤다. 부러울 따름이다. 여고 친구 중 지금까지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로 지역 내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교육기관에 다니고 있다. 우리 때만 해도 여성 취업률이 50%가 되지 않았기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게 아니면 직장을 구하려고 서울로 오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과거와 달리 최근 남아선호사상은 희박해졌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의미하는 출생성비는 과거 110~115 수준에서 이제는 105로 자연성비 수준으로 낮아졌다. 반면 20·30대 여성 취업률이 70%를 넘는 등 여성이 일하는 건 이제 상수가 됐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여성들은 과감히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지역에 따라 여성이 취업할 곳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지역 간 성비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 대부분에선 여전히 남초 현상이 심각하다. 내가 태어난 경북 지역은 성비가 1.33으로 전국에서 남초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 전통적인 중화학, 제조업 중심지인 울산광역시도 청년 여성 유출이 두드러져 1.31 수준이다. 강원도 역시 1.28로 청년 여성 유출이 많은 지역이다. 이에 비해 20·30대 기준으로 봤을 때 서비스업, 정보기술(IT), 문화산업 등 여성 선호 일자리가 몰려있는 수도권에선 여성이 오히려 많았다.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이 많이 이전해 여성 고용률이 높은 세종시 역시 성비가 1.0 수준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성비 불균형은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성비만이 출산율을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다. 주거환경과 보육 인프라도 매우 중요하다. 성비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세종시는 양질의 일자리도 많고 주거·보육환경도 좋아 출산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선 젊은 여성이 가장 많지만 높은 집값과 생활비, 지나친 경쟁환경으로 인해 출산율은 최하위다.

과거 연구에 따르면 결혼 이후 친정과 같은 광역자치단체에 거주하는 여성의 결혼 후 출산까지 소요 기간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1.19배 짧다고 한다. 고향에서 친정 부모 가까이 살면서 안정된 직장에 다닐 수 있다면 결혼과 출산에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 인구소멸을 막으려면 광역자치단체장은 일하고 싶어 하는 청년 여성이 고향을 떠나지 않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유치하고 청년 여성 창업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을 가장 우선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