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무리한 자료요구가 ‘늦장 기업결합 심사’를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의 늦장 심사는 인수합병(M&A) 절차 지연으로 이어져 산업계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국회 정무위원장을 역임한 윤한홍 의원실에 따르면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가운데 90일 이상 심사한 사건의 평균 자료요구 건수는 작년 상반기 1.5건에서 올해 상반기 7건으로 늘었다. 장기 심사한 사건에서 공정위의 자료요구가 급증했다는 의미다. 접수일 기준 3개월이 지난 기업결합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평균 자료요구 건수도 작년 상반기 3.4건에서 올해 상반기 4.7건으로 늘었다. 접수 후 3개월 이상 사건의 평균 심사일수도 131.2일에서 146.6일로 증가했다.
공정위 늦장 심사의 대표 사례는 도레이첨단소재 FCCL 사업부 매각이다. 1년2개월째 심사 결과를 받지 못해 국가 핵심 기술 기업의 중국 매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올 초 롯데렌탈 매각 역시 1년 가까이 심사했지만 불승인으로 결론 났다.
늦장 심사의 원인으로 공정위의 무분별한 자료요구와 사건의 경중을 가리지 않는 심사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기업결합 심사 기간은 신고일로부터 30일이고, 필요한 경우 90일 범위에서 연장해 최장 120일까지 심사할 수 있다. 다만 공정위가 기업에 자료를 요구해 원하는 답변을 얻을 때까지는 심사 일수에서 제외된다.
일각에선 공정위가 심사 기한 규정을 어기지 않으려 기업들에 무분별하게 자료를 요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사모펀드(PEF) 관계자는 “공정위가 펀드의 중요한 비밀 정보인 해외 출자자(LP) 정보까지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외국계 투자 담당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정보를 요청한 사례가 없다”고 반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미국은 접수 후 30일간 당국의 별다른 조치가 없으면 승인으로 간주해 M&A 거래를 완료할 수 있고 유럽도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며 “사건마다 경중을 달리해 처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처리는 한국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공정위 측은 “감사원 감사도 있고 국회에서 PEF는 꼼꼼히 봐야 한다는 요청이 있어 심사를 부실하게 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 재편, 자본의 효율적 배분이 M&A로 이뤄지기 때문에 관련 심사가 늦어지면 국가의 산업생태계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