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카카오 본사. 긴급 타운홀 미팅에 모여든 카카오 직원들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카카오를 사업회사 ‘카카오AI’와 투자회사 ‘카카오X’로 분할한다는 공지에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러다 김도영 카카오X 대표 내정자 발표에 좌중이 소란스러워졌다. 직원들의 단체 카톡방에선 메시지가 불난 듯이 오갔다. “도대체 김도영 대표가 누구야?”
○카카오 곳간열쇠 쥔 삼성맨김 대표는 카카오 내부에서도 유명하지 않은 편이다. 주력 계열사 대표가 아닌데다 카카오에 몸담은 지 1년 5개월밖에 되지 않아서다. 1975년생인 김 대표는 지난해 3월 카카오의 투자 전문 계열사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대표 겸 카카오 CA협의체 그룹투자전략실장으로 영입됐다. 그는 삼성SDS 선임컨설턴트(2001~2004년), 삼성증권 IB본부 이사(2007~2022)를 거친 ‘삼성맨’이다. 2022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는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2024년부터 2년간 경영쇄신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김 대표가 활약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카카오 안팎에서 김 대표의 이름이 크게 거론될 일도 없었다. 그런 김 대표에게 카카오 본업(카카오AI)보다 큰 조직을 맡긴 것은 ‘놀라운 결단’이라는 게 카카오 내부의 평가다.
카카오X는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카카오픽코마·카카오모빌리티 등을 아우른다. 사실상 카카오톡 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열사를 총괄하면서 가상자산, 피지컬 AI, 자율주행, 로보택시 등 새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
카카오 내부에선 ‘곳간을 쥔 카카오X’가 카카오AI보다 큰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분할 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 카카오X 0.64 카카오AI 0.36다. 이날 온라인 기자 간담회 발표 순서도 김 대표가 정신아 카카오AI 대표 내정자(현 카카오 대표)보다 앞섰다.
○김범수式 충격 요법카카오의 미래가 달린 카카오X를 ‘뉴페이스’에 맡긴 것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결단으로 전해졌다. 김 창업자는 2023년 12월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며 경영 쇄신을 다짐했다. 당시 카카오는 경영진의 모럴해저드 논란에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다.
카카오 관계자는 “김 창업자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모든 사안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봤다”며 “2년간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바꿨다”고 전했다. 김 창업자는 가장 먼저 카카오의 대표 성공 전략이던 ‘자율 경영’ 원칙을 철폐했다. 외부 감시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에 힘을 실었다.
이후 그룹 차원에서 강력한 쇄신을 추진했다. 카카오 계열사 수(국내 기준)는 이달 86개까지 줄었다. ‘문어발 확장’에 집중했던 2023년 말(138개)과 비교하면 3분의 1가량을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헬스케어, 다음(AXZ)을 매각했다.
이번 인적분할은 카카오가 2년여 이어온 그룹 개편의 마지막 퍼즐에 해당한다. 카카오 측은 “AI 시대에 맞는 실행 속도와 자본 배분 체계를 갖추려는 취지”라며 “사업 규모 확대, 계열사 급증 등 회사가 비대해지면서 생겼던 부작용을 인정하고 손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카카오가 충격 요법을 택했다’, ‘승부수를 던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창업자와 카카오의 이력 자체가 충격 요법의 연속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김 창업자는 2007년 NHN 대표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나오면서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그는 한게임과 NHN을 떠나 카카오라는 도전을 했고, 성공했다.
○정비 끝낸 카카오…새 출발다만 인적분할 발표 당일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날 카카오는 전 거래일보다 7.49% 하락한 3만5800원에 장 마감했다. 당장은 인적분할 발표 후 변화가 불안하다는 반응으로 해석됐다. 이를 두고 카카오 측은 “조만간 진짜 시장의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복합기업 할인’에 눌려 저평가됐다는 설명이다. 카카오 주가는 올 상반기 견조한 실적에도 AI 투자 비용 부담과 수익화 지연 우려 등으로 지지부진했다.
김 창업자의 승부수에 기대를 거는 시선도 있다. 김 창업자는 2023년 말 경영 쇄신 의지를 밝힐 때도 “항해를 계속할 새로운 배의 용골을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창업자와 카카오는 안전한 선택 대신 매번 더 어려운 항해를 택하면서 성장했다”며 “과감한 결정이었던 만큼 이번 항해가 만들어 낼 결과물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인적분할 발표 당일 주가가 급락했다는 이유로 벌써 실패를 운운한다. 그렇게 단정할 일은 아니다. 카카오는 이제 정비를 끝내고 다시 도전한다. 쇄신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김 창업자의 의지가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