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중국" 퇴직금 올인한 직장인…10년 후 '대박' 터졌다 [권용훈의 직업불만족(族)]

입력 2026-08-29 06:00
수정 2026-08-29 07:09
<h1> </h1>“대기업과 정면승부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봤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장을 먼저 잡는 게 제 전략이었죠.”
유호성 남경무역 대표(58)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백주 수입업에 뛰어든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2016년 남경무역을 세운 그는 당시 퇴직금을 창업 자금으로 쏟아부었다. 유 대표는 “사실상 가진 것을 모두 걸고 시작한 셈”이라고 회상했다.

유 대표는 맥주와 위스키 시장을 두루 경험한 주류 마케팅 전문가다. 하이트진로에서 마케팅 업무를 시작해 진로발렌타인에서 위스키 마케팅을 맡았고, 이후 글로벌 주류기업 페르노리카에서는 프리미엄 스카치위스키 ‘발렌타인’ 등을 담당했다. 창업 후에는 중국 대표 백주업체 양하주창의 한국 판매권을 확보해 양하대곡과 몽지람·해지람·천지람 등을 국내에 독점 유통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와인도 위스키도 아닌 중국 백주였다. 당시 국내 백주시장은 연태고량주와 공부가주 등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소비자에게 익숙한 브랜드가 많지 않았다. 고급 중국술 역시 마오타이와 수정방 등 일부 제품에 한정돼 있었다.

유 대표는 이 시장에서 가능성을 봤다. 직접 중국 장쑤성의 대형 백주업체 양하주창을 찾아가 한국 판매권을 따냈고, 이후 양하대곡과 해지람·천지람·몽지람 등을 국내에 들여왔다. 당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회사였지만, 양하주창은 이미 장쑤성을 대표하는 초대형 주류기업으로 연 매출이 10조원에 달하는 곳이다.

대기업 피해 택한 ‘중국술’…주변선 “왜 하필” 핀잔유 대표는 20~30대부터 언젠가는 자신의 브랜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창업을 결심한 뒤 가장 먼저 세운 원칙은 ‘대기업과 정면 승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십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자본과 브랜드 인지도,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봤다. 대신 아직 대기업이 들어오지 않은 시장을 선점해 브랜드를 먼저 키우기로 했다.

그가 택한 시장이 중국 백주였다. 주변 반응은 냉담했다. 페르노리카에서 발렌타인과 로얄살루트 등 프리미엄 주류를 다뤄온 만큼 와인이나 위스키 사업에 나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얘기가 많았다. 당시 국내에서 중국술은 일부 고량주를 제외하면 소비자 인지도가 낮았다.

문제는 상품이었다. 국내에 들여올 만한 백주 브랜드를 찾았지만 중국 현지에 별다른 인맥이 없었다. 양하주창 관계자를 소개해준다는 사람들을 수소문하며 중국을 오갔고,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할 뻔한 일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인을 통해 양하주창 본사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간신히 잡은 첫 만남에서 유 대표는 협상 테이블에서 큰 판매량을 약속하지 않았다. 한국에 들여오면 단기간에 얼마를 팔겠다는 식의 제안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하이트진로와 페르노리카에서 참이슬과 카스, 발렌타인 등을 다루며 쌓은 경험을 설명했다. 저가 고량주 중심이던 한국의 중국술 시장을 프리미엄 백주 시장으로 바꾸고, 양하를 10년, 20년 살아남는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공식 미팅 뒤에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양하주창 임원들과 마주 앉아 도수 50도 이상의 백주를 맥주잔에 10잔 넘게 비웠다. 술잔이 거듭될수록 사업 얘기보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유 대표는 이 자리에서 중국의 술 문화를 존중하고 단기 거래가 아니라 장기간 함께 브랜드를 키우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야 중국에서 술자리가 단순한 접대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걸 알게 됐다”며 “몇 잔을 마셨느냐보다 그 과정에서 진정성이 전달된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양하주창 측에서는 “앞으로는 손님이 아니라 형제로 만나고 싶다”는 말이 오갔다. 단순한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의 관계가 아니라 한국 시장을 함께 키울 파트너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유 대표는 이후 협상을 거쳐 양하 브랜드의 한국 판매권을 확보했다. 판권 확보보다 어려웠던 국내시장 영업판권을 따냈다고 술이 저절로 팔리는 것은 아니었다. 국내 소비자에게 양하라는 이름 자체가 낯선 데다, 당시 중국술은 ‘싸고 독한 고량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미 연태고량주와 공부가주 등 익숙한 제품이 유통망을 선점한 상황에서 이름도 모르는 신제품을 취급하겠다는 도매상과 식당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중식 전문점과 주류 도매상을 직접 찾아다녔다.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잘 팔리는 중국술이 있는데 이름도 낯선 제품을 굳이 들여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광고와 판촉에도 제약이 많은 주류 특성상 돈을 쏟아부어 단기간에 브랜드를 알리기도 어려웠다.

유 대표는 정공법 대신 식당 한 곳씩 파고들었다. 똑같은 술 포스터를 뿌리는 대신 식당의 대표 메뉴와 셰프 얼굴을 넣은 액자와 배너, 메뉴판, 테이블 홍보물을 제작했다. 식당은 자기 가게를 알리고, 남경무역은 자연스럽게 술을 노출하는 방식이었다.

술을 부르는 이름도 바꿨다. 익숙한 ‘고량주’ 대신 ‘바이주(Baijiu)’라는 명칭을 전면에 내세웠다. 유 대표는 “위스키와 코냑, 사케처럼 하나의 프리미엄 증류주로 인식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음회와 페어링 디너를 열고 업계 관계자와 애호가들을 중국 현지로 데려가기도 했다. 이후 유명인들의 입소문과 대한항공 기내면세점 입점 등이 겹치면서 브랜드 인지도도 조금씩 올라갔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현금 확보'10년이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유 대표가 창업 당시 피해 가려 했던 대기업들이 오히려 백주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대기업이 없는 시장을 찾아 들어왔는데 이제 대기업도 백주를 보기 시작했다”며 “경쟁자가 늘어난 건 부담이지만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사업이 자리를 잡은 뒤에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술도, 영업도 아닌 현금이었다. 주류 수입업은 제품이 팔리기 전부터 돈이 나간다. 해외 제조사에 상품 대금을 지급하고 국내에 들여오면 세금을 먼저 낸다. 도매상에 제품을 넘긴 뒤 실제 판매대금이 들어오기까지는 다시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다음 수입 물량을 주문하고 직원 급여와 물류비도 지급해야 한다.

초창기에는 이 자금 공백을 메우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주문은 들어오는데 당장 다음 물량을 들여올 현금이 부족해 주변 지인들에게 급하게 돈을 빌리는 일도 잦았다. 제품이 팔려 대금을 받으면 빌린 돈을 갚고, 다시 다음 수입대금을 마련하는 식으로 버텼다.

환율이 오르면 부담은 더 커졌다. 상품 대금뿐 아니라 통관 과정에서 내는 세금에도 환율이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환율이 움직일 때마다 제품 가격을 바꿀 수도 없다. 유 대표는 “운영하는 물량의 최소 네다섯 배에 해당하는 자금이 있어야 사업을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며 “수입업은 물건이 잘 팔린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판매량이 갑자기 늘면 다음 물량을 들여올 돈도 그만큼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업 밑천은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받은 퇴직금 전액이었다. 몇 년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접어야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유 대표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브랜드가 커지는 재미’였다. 그는 “아무도 모르던 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식당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서 내가 들여온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짜릿하다”며 “돈을 버는 것보다 브랜드를 키우는 과정 자체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고급 백주에서 하이볼까지 확장
남경무역은 최근 몽지람 등 고가 백주 중심에서 양하블루와 양하골드 등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제품으로 판매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제품 선정 과정에는 국내 중식당 업주와 셰프, 백주 애호가들도 참여시켰다. 이들을 중국 현지 공장으로 초청해 품질과 가격, 한국 음식과의 궁합 등을 직접 평가하도록 했다.

남경무역이 들여오는 양하주창의 대표 브랜드 양하대곡은 1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중국 백주다. 청나라 건륭제 시기 황실에 진상되며 이름을 알렸고, 중국 정부가 1952년부터 1989년까지 다섯 차례 연 전국 주류 품평회에서 세 차례 연속 금상을 받으며 중국 ‘8대 명주’에 이름을 올렸다. 양하주창은 이 같은 전통을 바탕으로 몽지람·해지람·천지람 등 프리미엄 제품군까지 확장해왔다.

유 대표는 백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음식’에서 찾고 있다. 과거 접대·유흥시장에 크게 의존했던 위스키처럼 술 자체만 판매해서는 시장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중식과 육류 요리 등 음식과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소비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중식 자체가 고급화되고 셰프들도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며 “술만 파는 시장보다 음식과 함께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백주도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당시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유 대표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직장에 있을 때부터 미래의 내 모습을 계속 그려봐야 한다”며 “판단이 섰다면 결국 도전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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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