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한 채' 믿고 살았는데…"뒤통수 맞았다" 230만명 '분통'

입력 2026-08-21 17:53
수정 2026-08-22 02:50
한국 사회에서 주택은 단순한 자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가구 1주택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평생 일과 절약으로 만든 결실이다. 성실한 삶을 상징하는 ‘내 집 한 채’는 일종의 심리적 훈장과 비슷하다. 보수와 진보 정권 가리지 않고 이 훈장에 특별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은 배경이다.


1967년 1가구 1주택 비과세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어진 ‘1주택자는 실수요자’라는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1주택이라도 거주냐 비거주냐에 따라 세금을 달리 매기기로 한 것이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부동산시장 정상화와 실거주 중심 과세 형평성 제고다. 주택을 거주 목적이 아니라 자산 증식이나 투자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이 1주택자의 전세대출 회수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세무당국이 비거주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와 보유세 부담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반발은 거세다. 21일 법제처에 따르면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에 9300건 넘는 입법 의견이 쏟아졌다. 대부분 반대 의견이다. 또 다른 후폭풍도 예상된다. 실거주 중심 정책 기조로 전·월세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론도 좋지 않다. 이번주 대통령 지지율이 서울에서만 10%포인트 급락한 것도 세제 개편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렇게 반발이 큰 이유는 1가구 1주택이라는 ‘성역’을 건드린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실거주 중인 1주택자라도 언제든 비거주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본다. 서울 기준 228만여 명의 1주택자가 잠재적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1주택 보유 가구는 938만 가구로 전체 유주택 가구(1268만 가구)의 74.0%를 차지한다. 비거주 1주택 가구에 관한 공식 통계는 없다. 시장에서는 주거실태 조사와 주택소유 통계를 토대로 서울 기준 83만 채(다주택자 소유 포함) 수준으로 추정한다.

재정경제부는 취학, 질병, 전학 등 불가피한 사유에 따른 비거주 기간을 최장 3년까지 거주 기간으로 인정하면서도 ‘1년 이상 계속 거주한 주택’이라는 요건을 두고 있다. 이 조항이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 이사장은 “1주택자의 비거주에는 생애 최초 주택 마련, 상향 이동, 자녀 교육, 직장 이동, 부모 봉양, 임차보증금 반환 자금 마련 등 다양한 현실적 사정이 존재한다”며 “주택 정책은 국민의 삶을 제도에 맞추기보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거주 한 줄로 수십만 인생 재단…집 한 채 있다고 벌받는 느낌"
60년 불문율 '1가구 1주택자 보호' 흔들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임차 가구 비율은 70%에 육박한다. 이는 서울 평균(약 50%)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전·월세로 거주하며 학군지의 생활 인프라를 누리려는 학부모 수요가 몰린 결과다. 대치동 아파트 매매가는 20억~30억원대인 데 비해 전세가는 8억~13억원대에 형성돼 있다.

정부의 비거주 1주택 규제 후폭풍이 큰 것은 수십 년간 통용된 주거 선택권을 ‘투기 행위’로 규정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고등학교·대학교 진학은 예외로 두면서도 초·중학교 진학을 위한 비거주는 규제 대상으로 분류하는 등 정책의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주택자의 생애주기별 주거 이동 자유라는 기본권을 건드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주택 실수요자 원칙 무너져‘1가구 1주택을 보호한다’는 원칙은 한국 부동산 세제 60년의 기본 전제였다. 양도소득세의 출발은 1967년 11월 제정된 부동산 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른 ‘부동산투기억제세’다. 1974년 말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양도세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1가구 1주택 비과세’(소득세법 전면 개정) 조항을 도입했다. 1가구 1주택을 단순한 자산 증식 수단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재’로 본 것이다.

주거 상향 이동을 위한 자본 보존 성격도 있었다. 집을 팔아 얻은 양도차익은 더 나은 주거지로 가기 위한 재투자 재원으로 기능한다. 장기간 1주택 보유로 발생한 매매 차익의 상당액은 불로소득이라기보다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명목이익으로 인식됐다. 이전오 강남대 세무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세법이 1가구 1주택자를 보호한 이유는 헌법상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과도한 양도세 부담은 주거 상향 이동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77년 주택청약제도 도입 이후 ‘무주택자의 1주택 마련 지원과 1주택자 보호’라는 정책 기조는 50년간 유지·확장됐다. 무주택 가구주에게 분양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1주택 진입을 돕는 장치도 구축했다.

비과세 요건 또한 점차 정교해졌다. ‘3년 이상 보유’ 요건이 도입됐고 1999년에는 고가 주택 기준(5억원)이 신설됐다. 이후 기준은 6억원, 9억원, 12억원으로 상향됐지만 장기 보유 시 세 부담은 크지 않았다. 최대 80%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적용돼 1주택자의 세 부담을 낮추는 구조였다. ‘비거주 1주택자’ 규제가 본격화한 것은 문재인 정부부터다. 조정대상지역 2년 거주 요건을 도입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에 거주 요건(최대 40%)을 추가했다. ◇조세 정의 vs 거주 이전 자유 제한지난 3일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사실상 ‘게임체인저’로 평가된다. 실거주하지 않은 1주택자는 양도할 때 물가 상승분조차 보전받기 어렵고 보유세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1주택자 내부에서도 ‘투기’와 ‘실수요’를 가르는 기준이 강화된 셈이다.

이번 대책의 취지는 주택을 거주가 아니라 자산 증식 수단으로 활용하는 수요를 억제하고 조세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방 거주자가 집값 상승기 때 서울 강남에 ‘똘똘한 한 채’를 사두는 게 다시금 가격을 띄우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에 대한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거주 의사가 없는 보유자에게까지 동일한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이 시장에 나오게끔 유도해 무주택자의 기회를 넓히겠다는 정책적 의도도 담겼다.

상당수 1주택자가 반발하는 것이 단순한 세 부담 증가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개인의 생애 설계가 획일적 기준으로 재단됐다는 박탈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비거주 유주택 가구 상당수는 투기 목적이 아니라 직장, 교육 등 생활권 불일치에서 비롯된 ‘주거 이동의 미스매치’ 성격이 강하다. 수도권에 가족을 두고 지방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실거주용 주택을 미리 마련한 신혼부부, 재건축 이주 가구, 학군을 따라 이동하는 학부모 등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이들은 비거주 사유를 당국에 소명해야 하거나 인정 여부의 불확실성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비거주 1주택 규제는 실거주 1주택자는 물론 무주택자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누구나 생애 과정에서 비거주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 사다리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률적으로 실거주를 요구하면 자산가가 아닌 근로소득자가 인기 주거지에 진입하기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거주 여부가 실수요를 판단할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투기와 실수요를 가르는 절대적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천경욱 세무법인 송우 대표세무사는 “비거주라는 이유만으로 1주택자의 세 부담을 높이는 것은 1주택자를 보호하던 기존 조세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고 했다.

이유정/구은서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