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연구에 평생 바친 日학자…쓰카모토 이사오 별세

입력 2026-08-21 10:45
수정 2026-08-21 10:47


전후 한국 문학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23년에 걸쳐 ‘조선어 대사전’을 편찬한 일본의 한국어 연구자 쓰카모토 이사오(塚本勳) 전 오사카외국어대 교수가 20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21일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쓰카모토 전 교수는 흡인성 폐렴으로 숨졌다. 장례는 가까운 친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질 예정이다.

1934년 재일한국·조선인이 많이 거주하던 오사카시 이쿠노구에서 태어난 그는 교토대 문학부 언어학과에서 공부하며 일본어의 기원에 관심을 갖다가 한국어 연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에는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재나 사전이 거의 없었다. 그는 교토조선중고급학교에서 비상근 강사로 일하며 재일조선인 사회와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한국어를 익히고 연구했다.

1963년 오사카외국어대에 조선어학과가 개설되자 전임강사로 부임해 이후 교수로 재직했다. 전후 일본 대학에 만들어진 조선어학과로는 덴리대에 이어 두 번째였다. 현재 오사카외국어대는 오사카대 외국어학부로 통합돼 있다.

그의 대표적 업적은 1986년 발간된 ‘조선어 대사전’이다. 편찬에만 23년이 걸렸고 연인원 약 300명이 참여했다. 수록 단어는 22만개에 달했다. 당시 일본에서 한국·조선어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대형 사전이 거의 없었던 만큼 이후 한국어 연구와 교육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쓰카모토 전 교수는 한국 문학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 가난 속에서 껌을 팔며 살아가던 한국 소년 이윤복의 일기를 엮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윤복이의 일기(ユンボギの日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 책은 일본에서 장기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일본에서는 북한 문학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개됐지만 한국 문학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윤복이의 일기’는 전후 한국 문학작품이 일본어로 번역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이 책을 읽은 뒤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 쓰카모토 전 교수는 이후 시인 김지하의 작품도 일본어로 옮겼다.

그의 활동은 대학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1977년 오사카 쓰루하시역 인근에 자신의 장서 등을 활용해 ‘이카이노 조선 도서자료실’을 개설했다. ‘이카이노’는 재일코리안이 많이 살던 오사카 지역의 옛 지명이다. 그는 이곳을 중심으로 시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과 한반도에 관한 자료를 제공했다.

평생 수집한 자료도 방대했다. 그가 오사카부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자료는 이후 ‘쓰카모토 문고’로 정리됐으며, 도서와 정기간행물 등 1만점이 넘는 자료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조선 관련 자료다. 한국어뿐 아니라 역사·문학·정치·법률 등 한반도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다.

연구 범위 역시 현대 한국어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기원과 관계, 고구려어, 재일한국·조선인의 언어생활 등을 폭넓게 연구했다. ‘조선어입문’, ‘조선어를 생각한다’, ‘일본어와 조선어의 기원’ 등 관련 저서도 남겼다.

한일 문화교류에도 깊이 관여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열린 궁중 만찬에 내빈으로 초청됐으며, 이를 계기로 미치코 황후에게 한국어의 역사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정년 이후에도 한국어 교육을 멈추지 않았다. 나라현과 오사카부의 자택 등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이어갔으며, 올해 봄까지도 한국어를 가르쳤다.

마이니치신문은 쓰카모토 전 교수가 숨지기 하루 전인 19일에도 병상에서 “이번 달에도 한글 강좌를 열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전부터 한국어를 독학해 사전 편찬과 문학 번역, 시민교육에 평생을 바친 그는 마지막까지 한국어와 함께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