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까지 2억 갚으세요"…은행 전화 한 통에 '날벼락' [시장톡]

입력 2026-08-24 06:30
수정 2026-08-24 06:53

"다음달이 대출 만기인데 은행에서 지난달 말 갑자기 대출금 2억원을 모두 갚으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집을 팔려고 해도 세입자 계약이 내년 4월까지 남아있습니다."

주택을 2채 보유한 A씨는 최근 거래 은행으로부터 약 2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전액 상환하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정부가 다주택자의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 주담대 만기 연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면서입니다. 문제는 해당 주택에 2025년 4월부터 2027년 4월까지 전세계약을 맺은 세입자가 실제 거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A씨는 집을 매물로 내놨지만 임대차 계약이 1년 가까이 남아 있어 매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호소했습니다.

A씨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 것은 정부 설명과 은행에서 받은 답변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1일 당시 유효한 임대차계약이 있으면 계약 종료일까지 만기 연장을 허용할 수 있다고 안내했습니다. 계약 종료까지 기간이 많이 남았다면 통상적인 만기 연장 주기에 따라 1년씩 연장한 뒤 임대차계약 유효성 등을 재심사하는 적용 사례도 제시했습니다. A씨 주장대로라면 기준일 당시 이미 유효한 임대차계약이 있었지만 은행에서는 만기 연장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금융정책이 빠르게 바뀌면서 비슷한 혼란을 겪는 실수요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실수요자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들어 가계부채와 집값을 잡기 위한 대출 규제를 잇달아 내놨습니다. 지난 4월에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수준에서 관리하기로 하고 다주택자가 보유한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 담보대출의 만기 연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했습니다. 기존 대출을 보유한 차주까지 규제 대상에 들어가면서 새로 돈을 빌릴 수 있느냐를 넘어 이미 받은 대출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도 문제가 됐습니다.

은행들도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맞춰 자체적인 대출 문턱을 수시로 바꿨습니다. 한 언론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17개 은행의 자체 가계대출 취급 기준 변경은 무려 70회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출 한도를 축소하거나 상품 판매·접수를 중단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는 조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같은 은행에서도 짧은 기간 대출 취급 방침이 바뀌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대출 모집인을 통한 접수를 막았다가 다시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중단하는 식입니다. 공식적인 규제 변경뿐 아니라 대출 신청 가능 시점을 앞당기거나 보증상품 가입을 제한하는 등의 세부 기준까지 감안하면 차주가 체감하는 변화는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계대출 증가가 주택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집값 상승을 자극하는 것을 막고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규제의 강도 못지않게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집을 사고 파는 것은 대출 규제가 바뀌었다고 곧바로 계획을 수정하기 어렵습니다. 매매계약을 체결하면 계약금부터 중도금, 잔금까지 수개월에 걸쳐 자금 일정이 정해집니다. 임대차 계약은 통상 2년 단위로 움직이고 자녀의 학교나 직장 때문에 이사 날짜를 마음대로 바꾸기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출 규정이 반복적으로 달라지거나 금융당국과 은행의 적용 기준이 엇갈리면 비용은 이미 의사결정을 마친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미 문재인 정부 때부터 수도 없이 바뀌는 정책에 일관성이 떨어지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하락한 것이 사실"이라며 "집주인부터 세입자까지 부동산 정책 때문에 고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