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등이 구조조정을 위해 추진하는 기업결합인 ‘대산 1호 프로젝트’가 어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에틸렌 등 범용 제품 설비가 세계적으로 과잉인 데다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 탓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석유화학업계로서는 그나마 한숨 돌리게 됐다.
그렇지만 기업결합에 조건부 승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사업 재편 시작부터 부담을 안게 됐다. 공정위는 저밀도폴리에틸렌(LDPE)과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시장에서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며 가격 인상 제한 등의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제품 공급 유지 의무와 정보 교환 금지 등의 조치도 함께 부과했다. 경쟁 사업자가 종전 네 곳(한화, LG, 롯데, HD현대)에서 세 곳(한화, LG, HD현대)으로 줄면서 경쟁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석유화학이 대규모 장치산업이라는 점을 혹시나 간과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원래 석유화학은 과점 체제일 수밖에 없는 시장인데, 사업 재편 결과로 경쟁사가 네 곳에서 세 곳으로 줄어든다고 경쟁 제한 시정조치부터 요구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정조치 때문에 유연한 시장 대응이 안 되면 사업 재편 자체가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산업통상부 등이 공멸을 막기 위해 진작부터 설비 폐쇄와 통폐합을 강하게 주문했다는 점에서도 공정위가 채찍부터 꺼내 든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기업결합 심사와는 별개라지만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 방안이 어떤 연유에서 나온 것인지도 궁금하다. 팔을 비튼 게 아니라 구조조정 기업의 자발적 계획이라고 하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한화솔루션과 롯데케미칼, DL케미칼이 추진하는 여수산업단지 사업 재편 프로젝트도 엄격한 잣대로 심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위기에 처한 기존 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하도록 돕는 게 먼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