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북쪽을 보라

입력 2026-08-20 18:37
수정 2026-08-21 00:13
나 같은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북쪽을 보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북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호주 노던 준주(準州)의 주도인 다윈에서 며칠을 보내고 돌아온 뒤, 한국이 바라봐야 할 또 하나의 북쪽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호주의 북쪽, 노던 준주다. 나는 주한호주상공회의소를 대표해 노던 준주 투자 서밋에 참석했다. 출장이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방문이었다. 작고한 삼촌 오스틴 애시는 노던 준주 대법원장을 지낸 뒤 노던 준주 행정관을 역임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94년 호주 최고 시민 훈장인 AC(Companion of the Order of Australia·AC)도 받았다. 어머니도 다윈에서 자랐다. 그래서 내게 다윈은 지도 위 먼 도시가 아니라 가족이 살던 친근한 동네였다.

한국에는 왜 이곳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까. 물론 노던 준주는 간과하기 쉬운 곳이다. 행정적으로도 독특하다. 면적은 한국의 13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약 25만7000명에 불과하다. 서호주와 퀸즐랜드주를 제외한 호주의 어느 주보다 넓지만, 정식 주가 아니라 연방정부 관할 준주다. 광활하고 거칠며 기후도 혹독하다. 동시에 카카두 국립공원과 아넘랜드, 캐서린 협곡, 호주 중부의 붉은 심장부에 자리한 울루루를 품은 장엄한 땅이기도 하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다윈 사람들의 자신감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호주의 변방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시아로 향하는 호주의 정문에 서 있다고 믿는다. 지도를 펼쳐보면 그 말이 이해된다. 다윈은 서울 기준으로 시드니보다 훨씬 가깝다. 다윈에서 북쪽으로 비행기로 다섯 시간 이내 지역에는 4억5000만명이 살지만, 남쪽으로 같은 거리 안에는 2500만명뿐이다. 노던 준주가 호주의 아시아 관문을 자처하는 이유다.

이곳의 성장 잠재력은 한국과도 잘 맞는다. 노던 준주는 비탈루 분지를 비롯한 막대한 천연가스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에너지와 핵심 광물, 첨단 제조업, 인공지능(AI) 인프라 분야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에너지와 토지, 통신 인프라 측면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 대규모 개발 과정에 원주민 공동체가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한·호주 관계를 위해 일해왔지만, 나 역시 두 나라의 관계를 너무 좁게 바라본 것은 아닐까. 서울과 시드니, 부산과 멜버른에 집중하느라 다른 지역의 기회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정적인 에너지와 회복력 있는 공급망,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한국이라면 이제 호주의 북쪽에도 눈을 돌릴 때다. 처음엔 평범한 투자 콘퍼런스에 참석한다는 마음으로 다윈에 갔지만 돌아올 때는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가장 큰 기회는 때로 우리가 잘 모르는 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도 북쪽을 바라볼 때다. 호주의 북쪽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