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 영국과 한국 같은 국가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미·중 경쟁으로 세계가 분열되는 상황에서 중견국들은 강대국 사이에서 각자 생존을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 협력해 개별 국가가 만들 수 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양자 협상에 의존할 경우 전략적 취약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해법은 경제적·전략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내는 협력에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연구실과 산업 현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서울에서는 기술과 경제 안보를 결합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런던의 연구 역량과 서울의 산업 경쟁력을 연결해 처음부터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공동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과 한국은 기술 강국 간 협력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 연구와 지식재산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런던의 지식 지구(Knowledge Quarter)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과 생명과학 분야의 혁신 생태계가 구축돼 있으며, 세계적인 AI 기업들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와 첨단 제조, 대규모 산업화 능력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양국의 강점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영국이 기초 과학과 알고리즘 연구에 강점을 갖고 있다면, 한국은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데 탁월하다. 연구 성과와 산업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양국 협력의 핵심이다.
이러한 철학 아래 출범한 것이 UCL 글로벌산업기술협력센터(GITCC)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과 함께 설립한 이 센터는 차세대 모빌리티, 바이오, 반도체, 배터리, AI를 핵심 분야로 삼고 있다. 특히 공동 연구 성과를 5년 내 상용화 단계까지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많은 국제 연구 협력이 논문 발표에 머무르는 것과 달리, UCL GITCC는 속도와 실행에 초점을 맞춘다. 연구자와 기업이 함께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다.
이 같은 협력은 양국 정부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영국과 한국은 다우닝가 협정을 통해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하고 AI·디지털·생명과학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UCL GITCC는 외교적 약속을 실제 산업 협력으로 구현하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 민족주의와 공급망 분절이 심화되는 시대에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AI와 첨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플랫폼에 대한 의존이나 중국의 규모 경쟁에 밀릴 위험도 존재한다. 결국 경쟁력을 유지하는 국가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상호 보완적 역량을 결합하고, 이를 제품과 산업, 양질의 일자리로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나라일 것이다.
영국과 한국은 이미 그런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를 실행할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고 과감하게 실행하느냐다. 서울과 런던에서 나타나는 초기 신호는 양국이 그 준비를 마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글 게라인트 리스(Geraint Rees)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