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집주인이 살겠다네요"…전세 씨 마르고 월세도 '껑충' [시장톡]

입력 2026-08-20 13:30
"내년 1월이 전세 만기인데, 집주인이 입주하겠다고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집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미리 연락했다고 하더라고요.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2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에요. 급하게 주변 부동산에 연락을 돌려봤지만, 기존 전셋값은커녕 껑충 뛴 시세에 맞춰주겠다고 해도 들어갈 집 자체를 찾기가 힘듭니다." (서울 마포구에 전세로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씨)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 임대차 시장이 심상치 않은 기류를 보이고 있습니다. 보통 이사 비수기로 분류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전·월세 물건이 자취를 감추는 품귀 현상이 가시화하는 모습입니다.

임대차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가장 큰 원인으로는 최근 발표된 세제개편안이 꼽힙니다. 정부가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세금 부담을 대폭 강화하는 등 '실거주'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자, 전·월세를 주고 있던 집주인이 대거 '실거주'로 방향을 튼 것입니다. 집주인들의 예고 없던 복귀 소식에 기존 세입자들은 급하게 새 둥지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중개 거래 현장에서는 일찍이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는 분위기입니다. 서울 성북구의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세는 지금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꼭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본격적인 이사철이 다가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이라며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들어갈 집이 없어서 난리가 났다"고 전했습니다.

광진구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도 "정부 정책 발표 이후 강남 집값은 좀 내려갔다고 하는데, 정작 전·월세를 구해야 하는 무주택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며 "아이가 학령기인 집은 중간에 지역을 옮기기도 어려워 걱정이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서울 전역의 주요 아파트 단지들을 살펴보면 임대차 물건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네이버부동산에 따르면, 2000세대가 넘어가는 대단지 중에서도 전세 물건이 단 몇 건에 불과하거나 전멸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있는 '래미안위브'는 2652세대 대단지인데, 현재 시장에 등록된 전세 물건이 단 1개에 불과합니다. 월세 역시 3개뿐으로, 2600세대가 넘는 단지 규모가 무색한 지경입니다. 구로구 신도림동에 있는 '신도림 대림 1, 2차' 역시 2298세대 대단지인데 전세 물건은 단 1건뿐으로, 임대차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서울 내에서 손꼽히는 매머드급 단지인 강동구 상일동의 '고덕그라시움'(4932세대)마저도 시장에 나온 전세 매물이 19개에 그쳤습니다.

전세 수급 불균형은 월세도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임차 수요가 월세 시장으로 밀려들면서 월세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탔습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사상 처음으로 16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인 2017년 평균 89만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로 뛰어오른 수치입니다. 다만 이 통계에는 이번 세제개편안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아, 이후에는 더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월세난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매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전세와 월세 가격까지 상승하는 '트리플 강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 매수를 고려하기에는 매매가 부담이 큰 데다 대출 문턱도 높고, 임대차 시장에 남기에는 물량 자체가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무주택자가 자금을 마련해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당장 집을 살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전·월세는 최소한의 주거 안정을 보장해 주는 마지막 주거 사다리"라며 "실거주 강화 정책이 촉발한 임대차 물량 감소가 주택 시장 전체의 유동성을 막고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가중하고 있는 만큼, 임대차 시장 전반을 다독일 수 있는 세심한 정책적 보완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