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해외 사업 확대를 겨냥해 영문이나 가타카나를 활용한 사명으로 잇따라 간판을 바꾸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1990년대부터 LG·SK·KT·POSCO처럼 해외에서 통하기 쉬운 영문 브랜드형 사명을 적극 도입한 데 비해, 전통적 사명을 오래 유지해온 일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1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2025년 사명을 변경한 일본 기업 2만1547개사 가운데 27%인 5781개사가 사명을 영문으로 바꾸거나 영문 비중을 높였다. 해외 고객과 투자자에게 쉽게 각인되는 이름을 앞세워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이다.
건설기계 대기업 히타치건기는 2027년 4월부터 사명을 ‘LANDCROS(랜드크로스)’로 바꾼다.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는 데다 최근 북미와 중남미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반영했다. 센자키 마사후미 사장은 “해외 고객에게 알기 쉬운 이름으로 했다”며 “히타치 브랜드 이상의 인지도를 갖고 싶다”고 밝혔다.
새 사명은 대지를 뜻하는 ‘LAND’에 고객(Customer), 신뢰(Reliable) 등 회사가 중시하는 가치를 담은 ‘CROS’를 결합한 조어다. 히타치건기는 새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수산 대기업 마루하니치로도 지난 3월 사명을 ‘Umios(우미오스)’로 변경했다. 북미와 유럽 사업이 커지면서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점이 배경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일본특수도업도 2023년 영문 사명을 ‘Niterra(니테라)’로 바꾼 데 이어 일본 내 사명 변경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더 일찍 나타났다. 럭키금성그룹은 1995년 그룹명을 ‘LG’로 바꿨고, 선경그룹도 1998년 ‘SK’로 간판을 교체했다. 한국통신은 2002년 ‘KT’로, 포항제철은 같은 해 ‘POSCO’로 사명을 바꾸며 해외 사업 확대와 글로벌 브랜드 구축에 속도를 냈다. 제일제당도 2002년 ‘CJ’로 사명을 바꾸는 등 업종이나 창업 당시 사업을 직접 드러내는 이름에서 벗어나 영문 약칭이나 통합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흐름이 확산됐다.
한국 기업들의 사명 변경은 외환위기 전후 사업구조 재편과 해외 진출 확대, 그룹 이미지 쇄신이 맞물린 결과였다. 반면 일본은 ‘히타치건기’나 ‘일본특수도업’처럼 모기업 이름이나 업종을 그대로 담은 사명을 장기간 유지한 기업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최근 해외 매출 비중이 높아지고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본 기업들도 사명 자체를 글로벌 브랜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영문 사명은 해외에서 기억하기 쉽고 투자자의 눈에 띄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름만으로 사업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대외적인 홍보뿐 아니라 직원들이 새 사명에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내부 브랜딩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