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14곳. ‘기술성장기업’ 제도를 이용해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기업 수다. 2024년 42곳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35곳으로 줄었고 올해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뛰어난 기술과 사업 모델을 보유한 적자 기업에 기업공개(IPO)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한 이 제도는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주요 상장 창구다. 하지만 이 제도로 입성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은 8곳에 불과하다.
기술성장기업 상장이 위축된 데는 핵심 관문인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까다로워진 영향이 크다는 게 벤처투자업계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부실 기업을 퇴출하기 위해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 문턱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장사와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도 쉽지 않다. 아리바이오는 코스닥 상장사 소룩스와 합병을 추진하고 있지만 거래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IPO 문턱이 높아지면서 비상장 시장에서는 기업가치 양극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벤처 투자의 최대 회수 창구인 IPO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만 돈이 몰리고 있어서다. 기술이전 성과를 낸 넥스아이와 아델에는 올 상반기 프리IPO(상장 전 투자)에 각각 500억원, 400억원이 들어왔다. 반면 IPO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업의 자금난은 깊어지고 있다. 기자가 만난 여러 바이오 벤처 최고경영자(CEO)는 “투자받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바이오업계도 부실 기업을 증시에서 퇴출해 시장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동안 적지 않은 부실 바이오 기업이 시장에 남아 산업 전체의 신뢰를 깎아먹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그 회사 문제가 많은데 아직도 상장폐지 안 됐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부실 기업은 과감하게 내보내야 하지만, 혁신 기업의 진입을 막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국내 벤처시장은 IPO 의존도가 특히 높다. IPO 문턱을 높이려면 역합병이나 인수합병(M&A), 세컨더리 거래 등 다른 회수 통로를 함께 넓혀야 벤처 투자가 모험자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올 상반기 역합병을 통해 증시에 입성한 바이오 기업이 11곳으로 지난해 연간 5곳의 두 배를 넘어섰다. 임상 실패 등으로 회생 가능성이 낮아진 상장기업과 유망 비상장기업이 합병해 새로운 기업이 증시에 진입하는 방식이다. 부실 기업이 차지하던 상장 플랫폼을 성장 기업의 새로운 통로로 활용한 것이다.
부실 기업을 솎아내는 것만으로 건강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코스닥시장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정책이 벤처기업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