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한국 클래식 무대가 '말러'로 물든다.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라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구스타보 말러(1860~1911). 그의 호기로운 외침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말러리안' 위한 가을 무대
18일 공연업계에 따르면 연말까지 한국 무대에서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는 국내외 악단은 최소 7곳에 달한다. 말러 작품은 대체로 연주 난도가 높아 악단의 기량이 무르익은 연말에 선보이기에 적합하다. 이들 악단은 말러가 남긴 11개의 교향곡(미완성 작품 포함) 중 교향곡 1·2·4·8번을 들려준다.
말러는 1860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변방 보헤미아(현 체코)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빈 궁정 오페라 극장과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 등을 거치며 지휘자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정작 작곡가로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평생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말러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물론 삶의 근원적 비애까지 자신의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수많은 '말러리안'(말러의 열성 팬)이 탄생한 이유다.
올 하반기 말러 릴레이에 시동을 거는 건 인천시립교향악단이다. 다음 달 5일 '천인 교향곡'으로 불리는 말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한다. 1910년 초연 당시 합창단을 포함해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무대에 오르며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 인천시향 무대에는 약 300명이 참여한다.
○같은 곡 다른 해석
정명훈이 이끄는 KBS교향악단과 얍 판 츠베덴의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말러 교향곡 중 가장 밝고 간결한 작품으로 꼽히는 교향곡 4번으로 맞붙는다. 두 악단은 지난 상반기 두 달 간격으로 6번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이번 공연은 각각 10월 2일과 11월 26~27일에 열린다. KBS교향악단은 소프라노 크리스티아네 카르크와 함께, 서울시향은 소프라노 황수미의 목소리로 4악장에 그려진 천국의 평화로움을 노래할 예정이다.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2년 만에 내한하는 마에스트로 사이먼 래틀은 오는 11월 13일 2번 교향곡 '부활'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그를 지휘자의 길로 이끈 작품이다. 소프라노 루시 크로와 메조소프라노 캐런 카길, 국립합창단 등이 합류한다. 이에 앞서 9월 18일에는 여자경 지휘자가 이끄는 대전시립교향악단이 같은 곡을 연주한다.
'클래식계의 구원자'와 '클래식계의 이단아'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도 오는 11월 18일 내한 공연 레퍼토리 중 하나로 말러를 선택했다. 그는 첫 내한 무대의 피날레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선곡해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해석을 선보일 예정이다.
평균 한 시간이 훌쩍 넘는 말러 교향곡은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도전'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듣게 되는 매력만큼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최수열 인천시향 예술감독은 "1분도 안 되는 짧은 동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말러 교향곡을 감상하는 게 버거운 일이겠지만 역설적으로 힙한 감성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희로애락 사이의 미묘한 감정,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등이 급변하고 있는 이 시대를 투영하며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대전시향 지휘자는 "말러가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이고, 관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여러 악단의 선택이 겹친 것 같다"며 "특히 말러 특유의 스케일과 분위기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공연과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