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관행인 레퍼런스 체크 과정에서 이직자의 횡령 의혹 소문을 전달했더라도 전파 가능성이 없고 명예훼손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정인 간의 확인 요구 대화나 평판 조회 과정에서 나온 발언은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작고, 전파 가능성에 대한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법카 횡령해서 소송 준비 중" 소문 전했다가 '재판행'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최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동종업계 종사자 B씨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평판 조회)'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 화근이 됐다. A씨는 2024년 5월 B씨에 대한 평판을 알아보는 지인을 만나 "B 등이 회사 법인카드를 횡령해 회사에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해당 지인은 A씨와 20년을 교류해온 사람인 동시에 B씨가 이직을 타진하던 회사의 대표와 전 직장 동료였던 각별한 관계인 것. 결국 이 발언은 지인을 거쳐 회사 대표에게 전달됐다. 결국 이를 알게 된 B씨가 A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에게 명예훼손의 고의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직자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는 해당 업계 관행"이라며 "A씨는 B씨가 '언제, 어디서, 얼마를 횡령했다'고 단정적·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염려되니 확인해보라는 취지였다"고 했다. A씨와 B씨는 소속 회사가 다르고 서로 모르는 사이여서 명예를 훼손할 동기도 없다는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인 '공연성'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발언 내용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이거나 제3자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대화의 전달 경로가 'A씨→지인→대표→피해자 B씨' 순으로 이어진 점에 주목했다. 지인을 거쳐 발언이 전달된 인물은 '당사자'인 대표 한 명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대표는 레퍼런스 체크 대화와 직접 관련이 있는 '특정한 사람'이어서, 결국 A가 지인에게 한 말은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평판조회 과정서 법률 리스크 주의해야 노동시장에서 흔히 이뤄지는 레퍼런스 체크 과정은 종종 법적 문제로 확산되기도 한다. 실제로 자신에 대한 평판조회를 해준 전 직장 사람을 상대로 명예훼손, 근로기준법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중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가 동의 없이 지원자의 개인정보를 수집·제공하거나 제공받는 경우를 규율해 주로 전 직장의 인사담당자가 문제가 된다. 하지만 법원은 개인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개인정보로 보지는 않는다. 입사 지원자의 재직 부서, 진행한 업무 등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해 주는 것은 문제가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새 회사가 전 직장에 '전력 조회'를 의뢰하자 전 회사 인사담당자가 "임금 체불 진정 중"이라는 내용을 담아 회신했다가 취업방해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당한 사례에서 대법원은 "진정 진행 중이라는 내용은 개인정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지원자에 대한 '인성' 등 주관적인 평가를 이야기해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개인 정보'가 아니라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회사의 '개인정보파일'을 굳이 열람해 정보를 제공했다면 정보처리자에 해당해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악의적인 왜곡 사실을 전하는 경우엔 근로기준법 40조의 '취업방해 금지'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취업방해도 '방해 목적'이 없다면 성립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비위를 저질러 해고 절차를 밟고 있는 직원의 이야기를 외국계 인사담당자 모임에서 했다가 개인정보보호법, 명예훼손, 취업방해 혐의로 고소된 임원의 사례에서도 법원은 "조언을 구하는 과정"이었다며 취업방해의 '목적'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특정 직원의 성향이 담긴 자료를 모아서 업계에서 돌려보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경우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악의적으로 왜곡된 평가나 정보를 공공연하게 퍼뜨렸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앞서 판결처럼 '공연성'과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채용회사 입장에서 지원자의 인성과 역량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평판조회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법과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률 위반 가능성을 인지하고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