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와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미국 자산관리회사들이 대규모 주식 보상받은 AI 기업 직원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수수료를 낮추고 실리콘밸리 인력을 늘리고 있다. 상장이 현실화하면 현재 현금화하기 어려운 지분을 보유한 직원들이 대거 고액 자산가로 바뀔 수 있어 자산관리 시장의 고객 확보 경쟁이 상장 전부터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자산관리회사들은 오픈AI와 앤트로픽의 IPO가 새로운 백만장자 집단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고 이들 회사의 전·현직 직원을 대상으로 고객 선점에 나섰다. 특히 IPO 주관 업무를 맡는 모건스탠리와 같은 투자은행 계열 자산관리사까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고객들의 수수료 협상력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스페이스X 상장은 이 같은 경쟁이 가져올 시장 규모를 보여줬다. 모건스탠리 자산관리 부문은 직원 지분 보상 프로그램을 관리한 데 힘입어 지난 분기 IPO를 통해 740억달러가 넘는 순신규자산을 유치했다. 향후 12개월 이내로 예상되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의 IPO가 이뤄지면 비슷한 자금 이동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픈AI가 직원들에게 지급한 지분 규모가 상당하다. 회사 재무제표에 따르면 오픈AI는 2024년과 2025년 직원들에게 약 110억달러의 주식 보상을 지급했다. 현재 상장한다고 가정하면 미국 상장사 가운데 직원 주식 보상 총액 기준 7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직원 수가 약 8000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직원 한 명을 확보했을 때 자산관리사가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자산 규모가 크다는 의미다.
고객 확보 방식도 기존 고액 자산가 영업과 달라지고 있다. 규제 기준 운용자산이 190억달러인 자산관리회사 코레오의 제이슨 반 데 루 최고경영자(CEO)는 월가에서 정장을 입고 찾아와 전형적인 세 차례의 영업 미팅을 하는 방식으로는 이들 잠재 고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AI·기술기업 직원들이 기존 자산관리 고객과 다른 방식으로 금융회사를 평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격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코레오는 지난달 스페이스X 상장을 앞두고 집단으로 조건을 협상한 전·현직 직원 100여명에게 0.5% 미만의 자산관리 수수료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자산관리업계의 일반적인 수수료가 운용자산의 약 1% 수준이고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요율이 낮아진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마리너 웰스 어드바이저스도 특정 기업 출신 고객이 일정 규모 이상 모이면 수수료를 낮추고 있다.
기업과 직접 손잡는 사례도 등장했다. 씨티는 지난달 팔란티어와 제휴해 직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고객 확보에 나섰다. 마리너는 상장 전 단계에서 유동화하기 어려운 주식 자체에 자산관리 수수료를 매기는 대신 세금과 주식 보상 설계에 대한 비용을 별도로 받는 전략을 쓰고 있다. 스티브 모이어 마리너 자산전략 담당 이사는 직원들이 상장 이후 일부 주식을 매각하면 운용자산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받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자산 규모보다 향후 형성될 자산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존 고객 기준도 낮아지고 있다. 일부 자산관리사는 AI 기업 직원들에게 최소 계좌자산 기준까지 면제하고 있다. 제시카 카루소 머서 어드바이저스 수석 매니징파트너는 오픈AI나 앤트로픽 직원들이 보호예수 기간에 있거나 현재 실제 현금을 보유하지 않았더라도 미래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자산이 아니라 향후 도달할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쟁은 자산관리업계의 채용 전략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오픈AI와 앤트로픽을 비롯한 기술기업이 밀집한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고객뿐 아니라 이들을 관리할 자산관리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씨티를 비롯한 금융회사들이 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인력을 채용하고 있으며, 머서 역시 회사 내 다른 어느 지역보다 광역 베이 지역에서 빠르게 인력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AI 기업에서 등장할 신흥 부유층은 기존 자산관리 이상의 서비스도 요구하고 있다. 자선 활동이나 새로운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 등 통상 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패밀리오피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머서는 일부 AI 기업 직원에게 일반적인 자격 요건을 충족하기 전부터 ‘패밀리오피스 스타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전통적인 패밀리오피스 고객과 AI 신흥 부유층 사이에는 차이도 나타나고 있다. 자산관리업계에 따르면 AI 기업 직원들은 자산·세금·사업 관련 서비스를 확대해 요구하면서도 생활 전반을 대신 관리해주는 부가 서비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반 데 루 CEO는 아직 컨시어지 서비스나 청구서 납부 대행, 개인 전용기, 반려견 산책과 같은 서비스로 수요가 확대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의 IPO가 실제로 이뤄질 경우 자산관리업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상장 시점과 직원들의 실제 지분 현금화 규모가 남은 변수지만, 자산관리사들은 이미 수수료와 계좌 기준을 낮추고 인력을 실리콘밸리로 이동시키면서 미래 고객을 선점하는 데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AI 기업이 만들어낸 대규모 지분 가치가 실제 금융자산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어느 회사가 이 자금을 관리하게 될지가 다음 경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