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와 블랙록이 14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에 짓는 초대형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대형 재난 발생 시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떠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투자 열풍으로 데이터센터의 몸값은 높아지고 있지만 보험업계의 보장 여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메타와 블랙록이 텍사스주 엘패소에 건설하는 1GW(기가와트) 데이터센터 ‘소파이피야’는 세계 최대 보험중개사 마시의 자문을 받아 수억달러 규모의 보험에 가입했다고 전했다.
총사업비가 140억달러에 달하지만 재산 피해와 테러, 법적 배상책임 등 주요 위험에 대한 보험금에는 각각 수억달러 수준의 상한이 설정돼 있다. 대형 재난으로 피해가 커질 경우 보험 한도를 넘어서는 수십억달러의 손실은 사업 주체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시설 전체가 파괴되는 ‘전손’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초대형 AI 프로젝트를 인수할 보험사의 공급이 부족한 데다 전손까지 보장받으려면 보험료가 지나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마시가 자문한 보험 조건에 따르면 소파이피야는 공사 지연에 따른 임대료 손실에 대해 최대 2억1800만달러, 테러 피해에 대해서는 최대 6억4500만달러를 보장받는다.
재산종합보험의 보장 한도는 건설 기간 4억2700만달러다. 보험료는 약 500만달러다. 데이터센터가 가동되면 보장 한도가 4억5000만달러로 올라가고 이후 매년 2%씩 늘어난다.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피해는 사업 주체의 몫이다. 데이터센터는 자연재해에 따른 시설 피해뿐 아니라 환경 문제를 둘러싼 소송, 준공·가동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또 AI 데이터센터에는 값비싼 첨단 반도체가 대량으로 설치되는 만큼 한 차례 사고가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보험 계약은 보험업계가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충분한 보험 보장 능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체결됐다. 대주단은 통상 소규모 데이터센터에는 손실 전액을 보장하는 보험 가입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데이터센터 한 곳의 자산 가치가 불어나면서 전액 보험을 요구하기 어려워졌다. 부분적인 보험만 갖춘 상태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보험중개사들이 내놓은 해법은 ‘예상 최대손실(PML)’이다. 대형 재난 한 건이 발생했을 때 현실적으로 예상되는 최대 손실을 산출하고 그 수준을 기준으로 보험 한도를 정하는 방식이다. 보험중개사들은 대주단과 개발업체에도 예상 최대손실을 넘어서는 손실은 직접 감수하도록 조언하고 있다.
지난 7월 소파이피야 프로젝트의 채권 발행을 앞두고 블랙록 경영진도 투자자들에게 이 같은 논리를 제시했다. 엘패소에서는 극심한 기상재해가 드물고 최신 재난 대응 설계를 적용한 데이터센터가 대형 재난에도 완전히 파괴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시가 소파이피야의 예상 최대손실을 산정하면서 가정한 재난은 엘패소 지역에서 250~50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할 정도의 대형 화재다. 발생 빈도만 보면 희박해 보이지만 메타의 전체 임대기간인 20년으로 기간을 늘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같은 화재가 임대기간 중 최소 한 차례 발생할 확률은 약 3.9~7.7% 수준이다.
소파이피야 프로젝트 부채에 ‘A+’ 신용등급을 부여한 S&P의 비비안 고슬랭 애널리스트는 “최종 보험금이 모든 손실을 보전하지 못할 경우 메타가 최대 4억5000만달러까지 그 차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S&P가 부여한 등급은 메타 자체 신용등급보다 한 단계 낮다. 채권자가 데이터센터의 실물자산에 직접적인 청구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주요 이유다.
더 큰 위험은 메타의 임대계약이 끊길 가능성이다. S&P에 따르면 심각한 재해로 데이터센터 준공이 18개월 넘게 지연될 경우 메타는 위약금 없이 임대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메타의 장기 임대료를 기반으로 발행된 채권인 만큼 계약이 해지되면 채권 가치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다만 피치와 KBRA는 이 프로젝트에 메타의 회사채 신용등급과 같은 ‘AA-’ 등급을 부여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