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주회사나 대표회사가 계열사로부터 받는 상표권 사용료, 이른바 ‘간판값’ 규모가 지난해 2조2000억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표권 사용료 자체는 정상적인 거래지만, 산정 기준이 불투명할 경우 계열사 이익을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로 옮기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102곳의 상표권 사용료 수입은 2조223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2조1530억원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102개 그룹 가운데 80개 그룹이 지난해 1016개 계열사로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받았다.
대기업집단의 간판값 수입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0년 1조3468억원이던 규모는 2021년 1조5207억원, 2022년 1조7760억원으로 증가했다. 2023년 2조354억원으로 처음 2조원을 넘긴 뒤 지난해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룹별로는 SK가 349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SK는 2020~2024년 2위였지만 지난해 LG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그동안 1위를 지켜온 LG는 3490억원으로 2위였다.
한화는 1992억원으로 3위, CJ는 1331억원으로 4위였다. 두 그룹은 올해 공정위가 브랜드 사용료 적정성 여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현장 조사를 벌인 곳이다. 이어 포스코 1282억원, 롯데 1244억원으로 1000억원을 넘겼다. GS 992억원, 효성 616억원, HD현대 575억원, LS 573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상표권 사용료는 대표회사나 지주회사가 그룹 상표권을 보유하고, 계열사가 이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돈이다. 대표회사가 계열사로부터 상표권을 넘겨받거나 새 기업 이미지(CI)를 도입하면서 상표권을 취득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문제는 간판값의 적정 가치를 산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매출액에서 광고비 등을 뺀 뒤 일정 요율을 적용해 산정하지만, 구체적인 산정 방식과 요율은 회사마다 다르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나 대표회사에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을 경우 상표권 사용료가 사익 편취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정위도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지난 6~7월 한화와 CJ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했고, 상표권 사용료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상가격 기준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계열사가 마케팅과 광고 등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공로가 큰데도 지주사가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가를 받아 가는 것은 계열사가 이중으로 지출하는 부당한 행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정위는 반복되는 간판값 수취를 그룹별로 면밀히 분석해 부당 지원에 악용된다면 엄중히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